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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Aug 02. 2020

영동고속도로, 비, 그런데 넌



폭우가 쏟아진다. 매년 여름 반복되는 일인데도 늘 새롭고, 늘 겁이 난다. 이렇게 하늘에서 뭔가 쏟아지는 날이면 오르는 기억이 있다.





22살, 대학을 졸업하던 해. 몇년간 어지던 운전면허를 땄다. 그냥 신이 났다. 면허증을 받아 들고 제일 처음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친구. 이유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 착하고 착하던, 세상에 나쁜 기억은 없어 보이던 친구.

세상에 너무 나쁜 기억뿐이던 나에게, 그 친구는 너무나 예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그래도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가끔 친구를 만났다. 보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면허를 따고 신이 나 친구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내가 운전을 할테니, 너는 그냥 나만 믿고 따라와, 멋진 체를 했다.


면허증을 받고, 첫 운전이었다. 도로 연수 따윈 받아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목적지가 강릉이었다. 서울에 살던 우리는 양재역에서 겁도 없이 렌트를 하고 무작정 차를 몰았다. 지금 생각하도 아찔하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는 내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표정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영동고속도로에만 올라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쭉 가면 된다고. 그러면 그 길 끝에 바다가 있을 거라고.

앞으로 우리의 앞날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쭉 가다보면 푸른 바다가 있을 거라고. 너와 나, 우리 모두.




목숨을 건 운전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고속도로에 올라타 한참을 가는 도중 옆차에서 누군가 창을 내리고 소리를 질렀다.

뭐지, 이게 그 여자가 천천히 운전하면 욕을 한다는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친구가 창문을 내리고 들어보니 우리 차 문이 열렸단다. 아, 정신이 없어 문 잠긴 것도 확인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겁쟁이 우리는 문을 다시 닫을 생각도 못하고 어서 빨리 숙소에 도착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서니 그게 더 아찔했다. 이미 날은 어두웠고 알지 못하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야했다. 어찌어찌 숙소를 찾아 다행이도 넓직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시동을 끄는 순간 참았던 긴 숨이 나왔다. 숙소 바로 앞이 바다라는 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나서야 알게 된 환상이었다.


그밤, 친구와 나는 둘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 정신에도 서울에서부터 사온 고기를 구우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내가, 긴장이 풀린 나와 사랑에 아파하던 친구가.

그렇게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내게는 슬퍼하던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아파하지 말라고, 그깟 사랑, 나도 나 안다고.


전문대학 관광학과에 입학한 친구는 졸업을 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주권을 가진 한국 남자를 만났다.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남자는 은행권에서 일하며 착실한 삶을 이루고 있었다. 남자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소위 잘 나가는 분들이었고 친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돌아온 친구는 아주 오랫동안 그 남자와 연락을 했고, 남자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는 항공사에 취업했고 공항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아주 많이 본다고 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사는 그곳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밤, 문이 열린 렌트카를 타고 이제 막 면허를 딴, 도로 연수도 해보지 못한 나와 사랑이 끝난 친구는 목숨을 걸고 달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영동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고, 한가한 숙소에는 두 여자의 수다가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친구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마셨고, 그렇게 스물 몇살의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감샀다. 그 다음 삶이 어떨지는 감히 예상도 못했던, 눈이 부시도록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후 결혼을 했고 먼곳으로 떠났다. 친구의 사랑하는 남자가 있던 미국 LA에서 지내던 어느 밤,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던 그 남자를 찾아 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친구를 찾지 못했다. 살아야 했으니까.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보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다. 몇년의 해외생활로  연락처가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밤, 그 친구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밤처럼 아슬아슬했던 그 고속도로에서의 추억과 무사히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렇게나 나이가 먹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서글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네가 비를 참 좋아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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