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3)

by 루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
그 맑은 눈동자는 나의 혼란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무섭고, 설레."
내 대답에 아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아이는 더 묻지 않고 승강장 한편에 있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거의 다 왔어."
나는 아이의 뒤를 따라 걸으며 비로소 이 낡은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내린 승강장은 산비탈에 위태롭게 걸쳐진 상자 같은 형태였다. 케이블카가 드나드는 방향은 허공을 향해 있었지만, 그 반대편은 거대한 암벽에 막혀 있었다. 창문도, 다른 문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산이 건물을 삼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일한 통로는 아이가 향하는, 위층으로 이어지는 낡은 나무 계단뿐이었다. 옥상으로 나가는 구조인 듯했다. 하늘은 저 위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 쿵, 하고 울렸다. 한 계단씩 오를수록, 도시의 눅눅한 공기가 아닌, 차고 상쾌한 산의 공기가 더욱 짙어졌다. 등 뒤로는 내가 떠나온 세계의 규칙과 질서, 불안과 안도가 뒤섞여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는, 오직 위층으로 향하는 문만이 존재했다. 내 모든 열망의 종착지이자,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는 문.
수년간 나를 짓눌렀던 거대한 흰색의 세계가 저 문 너머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나를 앓게 했던 ‘파란색’이라는 열병의 실체를 마침내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더 이상 헛된 망상이 아니었다. 낡은 책 속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내 두 발로 그 가능성을 향해 걷고 있었다. 마침내 계단의 끝에 다다랐다. 우리의 앞에는 낡은 철제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고리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계단의 끝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앞서가던 그 아이는 어느새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아무 말 없이 닫힌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결심을 굳혔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나에게 길을 내어준 것이다.
마지막 문은 너의 손으로 열라는, 무언의 격려였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차갑고 녹슨 철제 문고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심호흡과 함께, 온몸의 무게를 실어 문을 밀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동시에, 바람이 불어왔다.
도시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살아있는 바람이었다. 안개의 축축한 무게가 아닌, 상쾌하고 서늘한 생명력이 내 얼굴과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폐부 깊숙이, 아주 오랜 시간 비어있던 공간까지 새로운 공기가 가득 차오르는 감각. 그것은 도시가 허락했던 ‘상냥한 질식’과는 정반대의, 황홀한 각성이었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나는 보았다.
하늘을.
세상에 단 하나의 색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나의 눈앞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무한한 색채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었다. 해는 아직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주황색으로 타올랐고, 그 빛은 위로 번져나가며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이내 옅은 보라색으로 녹아들었다. 머리 위 가장 높은 곳은 아직 낮의 흔적이 남은 투명한 하늘색이었지만, 반대편 동쪽 하늘은 이미 깊고 고요한 남색의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파란색’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겨 있던 세계의 전부인가. 아니, 이것은 내가 상상했던 파란색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하며,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걸쳐진 구름들은 흰색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지는 해의 빛을 받아 금빛으로, 혹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동쪽의 구름마저도 짙은 보라색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수년간 나를 앓게 했던 열병의 실체. 나를 짓눌렀던 거대한 흰색의 세계. 그 모든 것이 이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한낱 먼지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색의 풍경을 보는 행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세계가 전복되는 경험이었다.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색과 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좁고 단단한 감옥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옥의 열쇠는, 처음부터 내 손안에 쥐어져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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