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2)

by 루트

얼마나 더 올랐을까. 케이블카의 단조로운 진동에 익숙해질 무렵, 창밖의 풍경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질식할 듯한 밀도를 자랑하던 우윳빛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안개의 입자들 사이로 희미한 윤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늘이 아니었다.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거대하고 검푸른 나무들의 그림자였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우리를 안개와는 다른 종류의 장막으로 감싸고 있었다. 빛은 나뭇잎과 가지들 사이로 잘게 부서져 내렸고, 케이블카 안은 어슴푸레한 녹색의 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안개의 바다를 벗어나, 깊은 숲의 바다로 진입하고 있었다.

​‘쿵.’ 육중하지만 부드러운 충격과 함께 케이블카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도착이었다. 아이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먼저 내렸다. 낡은 승강장의 나무로 만들어진 데크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도 뒤따라 내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는 그 한 걸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지방을 넘는 듯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뜨거운 설렘이 온몸을 관통했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낯선 땅의 감촉. 도시의 평평하고 단단한 보도블록과는 전혀 다른, 약간의 탄성을 가진 나무 바닥의 느낌이었다.


나는 승강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승강장의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온통 나무뿐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개가 다소 걷힌 공기는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맑고 서늘했다. 폐부 깊숙이 들이쉬자, 축축한 안개 대신 상쾌한 나무와 흙의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처음으로 온전히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낯선 공간에 던져졌다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곳은 도시의 규칙과 질서가 닿지 않는 곳. 그 끝에 ‘안정적인 미래’라는 목적지가 약속된, 도시의 유일하고도 견고했던 흰색 길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도시에서는 그 단 하나의 길이 숨 막혔지만, 막상 그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 서니 발밑이 꺼지는 듯한 현기증이 일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지 알려주는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통금 시간, 내일의 강의, 정해진 궤도. 그것들은 내가 걷던 흰 길 위에 박혀 있던, 나를 안심시키던 표지판들이었다. 그 모든 표지판이 사라진 숲속에서, 나는 완벽한 미아가 되었다. 뒤늦게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의식을 찌르는 것은 규칙을 어겼다는 죄책감이라기보다, 이제는 돌아갈 길의 존재조차 희미해졌다는 막연한 공포였다. 나는 정말로 경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단지 금지된 문을 열고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문을 통과하는 순간 원래 있던 세계의 문법을 모두 잊어버린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동시에, 케이블카 안에서 나누었던 아이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길을 만들었을 뿐이야.’ 아이가 말했던 제3의 길. 부딪혀 부서지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삶. 나는 여전히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수년간 나의 세계는 흑과 백, 성공과 실패, 순응과 소멸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외의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름답지만 현실감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 불안과 회의를 억누르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기대감이었다. 수년간 잿더미 아래에 묻어두었던,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뜨거운 설렘. 곧 파란 하늘을 보게 되리라는, 낡은 책 속의 문장이 현실이 되리라는 예감. 그 예감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손끝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나는 지금 두려운가, 혹은 설레는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미지의 것에 대한 황홀한 기대가 뒤섞여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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