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1)

by 루트

케이블카 안은 바깥보다 더 깊은 과거의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시트의 쿰쿰한 냄새와, 틈새마다 스며든 차가운 금속 냄새.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도 뒤따라 올라탔다.

육중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문이 닫히자, 바깥세상과 완벽히 차단된 듯한 적막이 우리 둘을 감쌌다. 낡은 전등이 깜빡거리며 우리 얼굴 위로 위태로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덜컹.

작은 충격과 함께 케이블카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 유리창의 쌓인 먼지를 닦아내자 닦인 부분 너머로, 탑승장의 풍경이 서서히 멀어지다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케이블카는 이내 두꺼운 안개의 품으로 완전히 파고들었다. 창밖은 온통 우유를 부은 듯한 흰색으로 변했고, 우리는 마치 거대한 생물의 식도를 따라 미지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케이블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내는 낮은 진동음만이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나는 삐걱거리는 낡은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아이 역시 창밖의 흰색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단조로운 기계음과 흔들림만이 가득한 좁은 공간 속에서, 침묵은 안개처럼 짙고 무거워졌다. 방금 전 첨탑에서 쏟아냈던 그 모든 고백들이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지금 누구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은 아닐까. 어색한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무나도 당연했지만, 가장 묻기 어려웠던 질문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이는 내 질문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눈동자는 짓궂은 아이처럼 반짝였다.

"글쎄. 너처럼 모범생으로 살진 않았지. 답답하잖아,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건."

그 가벼운 한마디가 내 심장을 찔렀다. 아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창밖의 희뿌연 안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흰색이 아닌 다른 것들을 찾으며 지냈어."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선명한 대답. 그 한마디에 나의 지난 수년이 한순간에 희뿌옇게 번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 더 캐묻고 싶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사라진 이후의 삶에 대해.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야만 하는 이 도시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균열을 일으켰던 아이는 어떻게 살아갔는가.

​"학교를 그만두고… 괜찮았어?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 걱정스러운 질문에 아이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글쎄. 어땠을 것 같아, 모범생?"

​예상치 못한 역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이 도시의 가치관에 따라 정해진 답을 기계적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힘들었겠지. 모두가 가는 길을 벗어났으니까. 위험하고… 불안했을 거라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내 대답을 들은 아이는 소리 없이 웃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서툰 대답을 듣는 어른처럼, 그 웃음에는 어떤 연민이나 비웃음 대신 맑은 유희가 담겨 있었다.

​"위험하고 불안한 것? 그건 교실 안에도 똑같이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지."

​아이는 툭 던지듯 말하고는, 다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장난기는 어느새 옅어져 있었지만, 그 자리에는 후련함과 단단한 확신이 대신 들어차 있었다.

​"나는 괜찮았어. 아니, 오히려 좋았지.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으니까."

​그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나 자신을 완벽하게 속이며 살아왔다. 가장 완벽한 모범생이라는 가면 뒤에, 잿더미가 된 마음을 숨기고서.
​"…어떻게 버틴 거야?"
​내 질문에 그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버틴다'는 단어 자체가 틀렸다는 듯이.
​"버틴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정해진 흐름에 저항하는 그 순간조차, 결국엔 그 흐름에 묶여있는 거니까. 그저… 다른 길을 만들었을 뿐이야."
​아이는 케이블카 창문에 손을 대고 마치 거대한 희뿌연 강과 같은 안개가 흐르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휩쓸리지도, 거스르지도 않는다니.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아이는 다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가 거대한 안개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정해진 방향으로 떠내려갈 때, 나는 그저 다른 길을 만들었을 뿐이야. 강둑으로 올라와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지켜봤지.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강줄기 옆에도 항상 작은 샛강이나 물웅덩이가 있거든."
​아이는 마치 비밀을 알려주듯, 목소리를 살짝 낮추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나는 거대한 강물만 보았을 뿐, 그 곁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샛강을 따라 걸었어. 남들이 보지 못한, 아니 어쩌면 보지 않은 좁은 길, 아무도 가지 않는 불편한 길. 그 길은 때론 막혀있기도 하고, 갑자기 끊어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보폭으로 걸을 수 있었어. 누구의 뒷모습도 보지 않고, 오직 내 앞의 길만을 보면서."
​‘내 보폭으로 걸을 수 있었다’는 말. 그 말이 무거운 추가 되어 내 마음을 내리눌렀다.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앞사람의 발뒤꿈치에 내 걸음을 맞추거나,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릴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꼭대기로 향하는 잊힌 문도 발견하게 되는 거고."
장난스런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연 아이의 말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를 말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에서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모두가 떠내려가는 거대한 흰색의 강.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낙오이고 소멸이었다.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흐름에 부딪혀 부서지거나. 내게 선택지는 그 두 가지뿐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강물에 휩쓸리지도, 맞서 싸우지도 않고, 그저 강둑을 걸으며 자신만의 샛길을 찾는 삶도 가능하다고. 떠내려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 제3의 길이 존재한다고. 아이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흰색의 안개뿐이었지만, 아이의 눈은 마치 그 너머에 펼쳐진, 자신만이 아는 수많은 샛길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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