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

by 루트

나는 다시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정해진 시간에 강의실로 향한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밖을 본다. 창밖은 여전히 희뿌연 안개로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안개에 질식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저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었기에, 그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저것은 벽이 아니라, 그저 얇은 커튼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 희뿌연 장막 바로 위에는, 내가 보았던 그 다채로운 색의 하늘이 매일같이 떠오르고 스러지고 있음을.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기숙사 방의 공기는 여전히 희미한 화학 약품 냄새가 났지만, 나는 그 너머의 맑은 바람을 기억했다.


학교로 가는 길, 나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솟아나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그들은 여전히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며 걷고 있다. 예전에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매끄러운 가면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 가면 아래에 숨겨진, 단 한 번도 색을 보지 못한 영혼의 잿빛 민낯이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딛고 선 이 땅이, 그들이 숨 쉬는 이 안개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더 이상 동질감이나 절망이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연민과, 나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자의 조용한 고독만이 남았을 뿐이다.


강의실은 여전히 거대한 흰색 상자다. 교수님의 단조로운 목소리는 ‘안정된 사회의 구성 원리’와 ‘정해진 길의 가치’를 설파한다. 나는 여전히 가장 앞자리에 앉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검은 활자들로 노트를 채워나간다. 겉보기엔 가장 완벽한 모범생.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저 이 도시가 선택한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임을 깨달았다. 나는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문법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말했던 ‘샛강’과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단 하나의 길’을 강조할 때마다, 나는 그가 미처 보지 못하는, 혹은 애써 외면하는 수많은 샛길들을 상상했다. 이 견고해 보이는 시스템 속에도 분명 틈은 존재했다. 그 아이가 잊힌 문을 찾아냈듯이, 나도 나만의 틈을 찾을 수 있을까.


도시의 챗바퀴는 여전히 돌아간다. 안개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감싸고,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챗바퀴 안의 다람쥐가 아니었다. 나는 챗바퀴를 돌리면서도, 챗바퀴 밖의 세상을 아는 존재가 되었다.


내 안의 잿더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잿더미 가장 깊은 곳에서, 그날의 바람이 살려낸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파란색을 향한 막연한 열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황, 분홍, 보라, 남색이 뒤섞인 노을의 색이었고, 바람의 감촉이었으며, 흙의 냄새였다. 그것은 ‘살아있음’ 그 자체의 색이었다. 나는 그 불씨를 안고, 이 흰색 도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말했던 ‘샛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나만의 샛강은 어디에 있는가? 그 아이는 그 아이만의 틈을 찾아 케이블카라는 비밀의 문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아이의 길이지, 나의 길은 아니었다. 그 아이를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안개의 강을 벗어나 또 다른 누군가의 강물에 합류하는 것일 뿐. 그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다. 나만의 물줄기는 나의 근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런데 나의 근원은 어디인가?


나는 멈춰 섰다. 도서관의 거대한 흰색 열람실 한가운데서. 사방에서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희미한 기침 소리만이 안개처럼 낮게 깔려 있었다. 나는 수십 년간 이 도시가 주입한 ‘나’를 연기해왔다.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모범생.’ ‘규칙을 잘 따르는 성실한 학생.’ ‘튀지 않고 무난한 동료.’ 이 모든 것은 두꺼운 흰색 페인트처럼 나를 덮고 있었다. 그 페인트를 긁어내면, 그 아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자리에 앉아, 강의 노트가 아닌 텅 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펜을 들었다.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적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우스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 한 번 던져본 적이 없다니. 내 모든 ‘좋음’과 ‘싫음’은 도시의 기준에 의해 재단되어왔다. 효율적인 것, 안전한 것,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나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가장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가?’


나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서 나오는 식단을 먹었다. 그것은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연료 주입에 가까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 산 정상에서 맡았던 흙냄새와 풀냄새를 떠올렸다. 그 날것의 감각. 어쩌면 나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도시가 ‘불필요하다’고 규정한 매운맛, 짠맛, 혹은 강렬한 신맛.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는가?’


파란색? 아니. 그것은 그저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떠올린 상징일 뿐이었다. 내가 본 것은 파란색만이 아니었다. 불타는 주황색, 부드러운 분홍색, 깊은 남색. 나는 그 모든 색을 사랑했다. 아니, 나는 ‘색이 있음’ 그 자체를 사랑했다. 이 텅 빈 흰색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색채를.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강의 노트를 완벽하게 정리했을 때?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나는 그날의 한 걸음을 떠올렸다. 미지의 문을 열었던 순간. 케이블카에 올라탔던 순간. 나는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 때 심장이 뛰는 사람이었다. 도시가 가장 경계하는 그것을, 나는 어쩌면 가장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펜을 들어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나는 흙냄새를 좋아한다. 나는 바람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금지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을 좋아한다.


나는 축축한 안개를 싫어한다. 나는 침묵을 싫어한다. 나는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호의 나열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정체성을 발굴하는 작업이었다. 도시의 안개와 잿더미에 파묻혀 있던 ‘나’라는 존재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는 일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알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나의 샛강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아주 가늘지만 분명한 물줄기를 이루는 것.


나는 노트를 덮었다. 열람실은 여전히 조용했고, 시간은 안개처럼 느리게 흘러갔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침묵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나는 방금 나 자신이라는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탐험가였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정해진 시간에 식당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점심시간이면 캠퍼스 구석진 곳, 인적이 드문 골목을 탐색했다. 모두가 ‘효율적’인 중앙 식당으로 향할 때, 나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나만의 틈을 찾았다. 그리고 며칠 만에 발견했다. 낡은 건물 뒤편, 환풍구 연기 속에 숨어있던 작은 가게. 그곳에서는 도시의 표준 식단에서는 맡을 수 없는, 맵고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가 났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혀가 얼얼해지는 감각을 느꼈고, 그 고통스러운 쾌감에 중독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도시가 규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나의 첫 번째 선택이었고, 나만의 샛강으로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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