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반항

by 루트

그 한 걸음의 시작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낡은 건물 뒤편, 거대한 환풍구가 토해내는 희뿌연 연기. 하지만 그 연기에는 늘 맡던 도시의 메마른 기계 냄새가 아닌, 아주 이질적이고 강렬한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냄새라기보다 차라리 ‘색’에 가까웠다. 희미한 붉은색, 혹은 강렬한 노란색을 연상시키는, 코끝을 찌르는 날카롭고도 향긋한 냄새. 나는 홀린 듯이 그 냄새의 근원을 찾아 다가갔다. 환풍구 바로 아래, 안개와 그림자 속에 파묻혀 하마터면 지나칠 뻔한, 낡은 나무 문 하나가 있었다. 간판조차 없었다.
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비효율적이다.’ ‘검증되지 않았다.’ ‘위험하다.’ 이것은 도시가 규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명백한 일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며칠 전 노트에 적었던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 때 심장이 뛰는 사람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나무 문을 밀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도시의 그 어떤 건물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아날로그적인 소리였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바깥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나를 감쌌다. 밖의 축축하고 서늘한 안개와 달리, 이곳은 따뜻하고 건조했으며, 아까의 그 이질적인 향신료 냄새가 훨씬 더 농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내부는 어두웠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은 흰색 형광등 대신, 천장에 매달린 몇 개의 노란 백열전구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 희미한 빛 아래로 드러난 것은 온통 나무의 질감이었다. 벽도, 바닥도, 테이블과 의자까지도 모두 짙은 갈색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테이블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고, 의자들은 낡았지만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모든 것이 이 도시의 표준 규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저 안쪽,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희미하게 ‘치익-’ 하는 무언가를 볶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벽에는 손으로 직접 쓴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오늘의 스튜’, ‘매콤한 닭고기 볶음’, ‘열 가지 향신료 카레’…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었다. 나는 그 낯선 단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주방 쪽 커튼이 걷히며, 주름진 얼굴의 주인이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손님 오셨네. 종소리를 못 들었네요."
그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넉넉하게 웃었다. 이 도시의 가면 같은 미소가 아니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 하나하나가 진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아직 손님들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지. 편한 자리에 앉아요."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구석진 작은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은 물과 함께 두툼한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천천히 봐요."
메뉴판은 비닐 커버로 씌워져 있었지만, 그 안의 사진들은 놀라울 만큼 선명한 색채를 뽐내고 있었다. 빨갛고, 노랗고, 초록색의 음식들. 그리고 사진 옆에는 작은 글씨로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오랜 시간 끓여낸 깊은 맛’, ‘잊었던 입맛을 되찾아줄 매콤함’, ‘지친 하루를 위로해 줄 부드러운 크림’.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감정을 파는 메뉴판이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진정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무엇을 골라야 할까. 무엇이 ‘정답’일까. 하지만 이곳에는 정답이 없었다. 오직 나의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짙은 노란색, 혹은 주황색에 가까운 소스.
‘열 가지 향신료 카레.’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잠자던 당신의 모든 감각을 깨워줄 강렬한 한 접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카레로 주세요."
주인은 넉넉한 미소와 함께 내 주문을 받아들고는 다시 주방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가게 안은 다시 따뜻하고 아늑한 침묵에 잠겼다. 나는 낡은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심장이 방금 전 메뉴를 고를 때보다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아주 미세한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것은 도시가 나에게 강요했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미지의 것에 대한,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나는 이 카레의 맛을 모른다.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혹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결과 역시 나의 선택에 포함되어 있었다.
주방 안에서 낯선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금속 도구로 톡톡 두드리는 소리, 칼이 도마에 닿는 경쾌하고 규칙적인 소리, 그리고 이내 ‘치이익-’ 하는, 기름과 열기가 만나는 생생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냄새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금 전의 그 소리들과 결합하여, 더욱 복잡하고 강렬한 향기로 진화하고 있었다. 톡 쏘는 듯한 매운 향기, 흙을 떠올리게 하는 묵직한 향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달콤하고 이국적인 향기. ‘열 가지 향신료’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그 냄새들은 내 코를 통해 들어와, 잿더미 같던 내 감각의 밑바닥을 간질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인이 두 손에 짙은 갈색의 두툼한 도기 그릇을 들고 나왔다.
"카레 나왔습니다."
그릇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색이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옅은 노란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날 산 정상에서 보았던,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을 닮은, 깊고 강렬한 주황빛, 혹은 짙은 황토색에 가까웠다. 윤기 있게 빛나는 소스 위로 뜨거운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그 김은 응축된 향신료의 향기를 내 얼굴로 고스란히 뿜어냈다.
소스 안에는 큼직하게 썰린 고기들과 감자와 당근, 다양한 채소들이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채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 도시에서는 본 적 없는, 선명한 초록색의 낯선 잎사귀가 몇 개 흩뿌려져 있었다. 흰색. 내가 알던 세상의 유일한 색은, 오직 카레 옆에 소복이 담긴 밥뿐이었다. 그러나 그 밥조차도, 이 강렬한 주황빛 옆에서는 더 이상 질식할 듯한 무채색이 아니라, 모든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깨끗한 캔버스처럼 보였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묵직한 쇠붙이의 감촉. 도시의 식당에서 사용하던 가볍고 규격화된 플라스틱과는 달랐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 낯선 색채와 향기 덩어리를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마치 금지된 과일을 베어 무는 듯한, 되돌릴 수 없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숟가락으로 캔버스 같던 흰 밥을 조금,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강렬한 주황빛 소스를 듬뿍 떴다. 큼직한 감자 조각도 하나 걸려 올라왔다. 김이 피어오르는 숟가락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맛을 보았다.

처음 혀에 닿은 것은 폭발적인 열감이었다. 도시가 불필하다고 규정했던, 살아있는 감각.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었다. 그 뜨거움 속에서, 메뉴판에 적혀 있던 ‘열 가지 향신료’가 차례대로 깨어나는 듯했다. 톡 쏘는 듯한 향기, 흙의 냄새를 닮은 묵직함, 알싸한 자극과 이국적인 달콤함이 한꺼번에 혀를 감싸고돌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것은 맛이 아니었다. 이것은 ‘색’이었고, ‘소리’였으며, ‘이야기’였다. 오랜기간 단조로운 맛,단조로운 감각만을 강요당했던 나의 혀가 마비에서 풀려나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푹 익은 감자는 부드럽게 으깨졌고,뭉근하게 익은 부드러운 식감의 당근은 단맛을 더했다.

모든 재료가 자신만의 맛을 뽐내면서도, 그 강렬한 소스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안정’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혼돈스럽고 강렬한 감각의 폭풍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던 모든 감각을 깨워줄 강렬한 한 접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의 온전한 첫 번째 반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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