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공기는 노란색이었다.
주방에서부터 커다란 팬에 샤프란을 넣고 볶아낸 리조또의 향기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안개의 눅눅한 물비린내 대신, 버터의 고소함과 향신료의 알싸한 온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정도원 그 사람, 요새는 화요일마다 오더군?"
기석 아저씨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것도 아주 칼같이 7시 15분에. 들어와서는 여전히 흰 채소 볶음만 시키지. 쳐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검사관 같고 말이야.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아저씨는 안경을 고쳐 쓰며 빙긋 웃었다.
"접시를 비우는 속도가 빨라졌어. 억지로 먹는 게 아니라, 그 무미건조한 맛에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아내는 사람처럼. 그리고 나갈 때 문고리를 잡는 손에 망설임이 없어졌더군."
"맞아요. 어제는 나한테 '주방 환기 시스템 소음이 좀 줄었군요'라면서 지나가더라고요. 칭찬인지 지적인지 헷갈리게."
주방에서 그 아이가 리조또를 내오며 거들었다. 녀석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내 옆자리의 하림은 스케치북 귀퉁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저는 오늘 강의 시간에 몰래 교수님 넥타이에 꽃무늬 그려 넣었어요. 물론 제 마음속 캔버스에요. 교수님이 '기능적 디자인'을 설파할 때마다, 넥타이에서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하니까 하나도 안 지루하더라고요."
하림이 킬킬거렸다. 그녀의 스케치북은 닫혀 있었지만, 손가락은 테이블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앞에 내려 놓은 리조또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을 잠시 바라보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숟가락을 들었다.
채윤 누나는 와인 잔을 흔들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들 아주 살판났네, 살판났어. 여기가 무슨 해방구라도 된 것 같다?"
와인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 웃음소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평화로웠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색깔 있는 사람들의 안식처.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얀김이 올라오는 리조또. 질척이는 저항감을 느끼며 한숟가락 뜬다.
분명히 맛있는 리조또다.
하지만 이상했다.
내 손에 들린 숟가락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숟가락을 놓치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힘을 꽉 주어야만 했다. 테이블의 낡은 나무 질감이 손끝을 찌르는 가시처럼 예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고막을 때리는데, 그 소리가 내 안에서 공명하지 않고 겉돌았다. 마치 방음 유리 너머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소리와 장면이 미묘하게 분리되어 느껴졌다.
나는 다시금 리조또를 한 숟가락 떴다. 노란 밥알들이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하지만 숟가락 위로 올라오는 하얀 김에 계속 눈길이 갈 뿐이다.
맛있어 보였다. 아니, 맛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밥알들이 혀 위에서 차가운 고무 조각처럼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식도를 넘겨 삼키는 행위 자체가 버거웠다. 목구멍이 이물질을 거부하는 듯 하다.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억지로 식도를 열고 내려갔다. 위장이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은 선명한 총천연색인데, 내 눈은 자꾸만 초점을 잃고 수증기 마냥 흐릿해졌다.
이 따뜻하고 완벽한 풍경 속에서, 나만 홀로 이질적인 부품처럼 삐걱거리고 있었다.
"모범생."
툭, 하고 끊어지는 목소리.
고개를 들자 채윤 누나가 턱을 괸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잔에 담긴 붉은 와인이 찰랑거렸다.
"너, 아까부터 묘하게 겉돈다?”
식탁의 소음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기석 아저씨도, 허공에 그림을 그리던 하림도, 주방에 있던 아이도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네? 무슨… 제가요?”
나는 짐짓 과장되게 웃으며 숟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텅 빈 깡통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채윤 누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내 연기의 틈새를, 그 얇디얇은 가면의 균열을 정확히 찔러들어왔다.
"남들 다 웃고 나서 좀 뒤에 따라 웃고. 대답은 입력된 값 출력하는 기계 같고. 밥알을 씹는 게 아니라 무슨 모래 씹는 표정이던데."
그녀는 포크 끝으로 내 접시를 가리켰다.
"입맛이 별로면 억지로 삼키지마. 나도 메뉴선정 실패하면 사장님께 양해구하고 남기는걸. 지금 너 먹는거 보면 보는 사람도 체하겠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나는 지금 너희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지적이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안의 뇌관을 건드려버렸기 때문이다.
"…피곤해서 그래요. 과제가 많았거든요."
변명은 구차했다. 기석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듯 안경을 고쳐 썼고, 하림은 내 눈치를 살폈다.
그 시선들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따갑게 느껴졌다. 피부 위로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내가 찾은 샛강이 자랑스러웠다. 안개 낀 도시에서 도망쳐 나와, 나만의 색을 찾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이들을 보라.
채윤 누나는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그녀는 도시의 규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직관과 욕망대로 살아간다. 그녀는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 같았다.
기석 아저씨는 단단한 ‘갈색’이었다. 도시라는 시스템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깊이를 이해하고 조율할 줄 아는 거목(巨木) 같았다.
하림은… 하림은 비록 흔들릴지언정, ‘무용함’이라는 자신만의 선을 긋고 있었다. 그 아이 역시 요리라는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무슨 색이지?
나는 도망쳤다. 흰색이 싫어서, 질식할 것 같아서 도망쳐 나왔다.
그것이 자유라고 믿었다.
하지만 흰색을 벗어난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
나는 그저 ‘흰색이 아닌 것’들을 찾아다녔을 뿐이다.
파란 하늘, 붉은 도미 요리, 노란 카레, 갈색 옹벽….
그것들은 모두 타인의 색이었다. 내가 감탄하고 소비했을 뿐, 내 안에서 잉태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거울인가?'
저들의 선명한 색을 비추며, 나도 색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안의 잿더미는 여전히 잿더미인 채로, 그 위에 남의 물감을 덧칠해놓고 화려해졌다고 자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저 도시가 싫어서 뛰쳐나왔을 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안해 보이네."
채윤 누나가 나직하게 덧붙였다.그녀는 와인 잔의 붉은 액체를 빙글 돌리며, 툭 던지듯 말했다.
"싫은 게 있어서 뛰쳐나오긴 했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까 뭘 좋아해야 할지는 모르는 얼굴이야. 연료는 다 써가는데 목적지가 없는 차처럼.”
나는 숟가락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부딪힌 숟가락에서 울린 날카로운 금속음이 접시를 때렸다.
그 소리가 내 내면이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정확했다.
나는 자유를 갈망했지만, 내가 원한 자유가 ‘무엇을 향한’ 자유인지, 아니면 그저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였는지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도시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삼았다.
하지만 도시를 지워내고 나면, ‘나’라는 존재에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안개 낀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흐릿하고 축축한 공허뿐이었다.
식당 안의 공기가 갑자기 희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리조또의 질척한 느낌과 여전히 피어오르는 김이 역하게 느껴졌다. 저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색을 가진 자들이 무채색인 자에게 보내는 동정처럼 느껴져 비참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에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요."
"모범생, 너 어디 가는데."
채윤 누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입을 열었다가는, 내 안의 텅 빈 동굴에서 나오는 메아리 소리를 들킬 것만 같았다.
나의 샛강이라 믿었던 곳이, 사실은 고여버린 우각호였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일어날게요. 미안해요."
나는 도망치듯 가방을 챙겨 문을 향했다.
등 뒤에서 그 아이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다시 문밖으로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안개가 나를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안개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의 공허와 바깥의 안개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 서글픈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안개였다.
아무리 색을 칠해도, 본질은 흐릿한 수증기에 불과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하얀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