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호 Jul 11. 2020

또 하나의 인생 책을 만나다

코스모스 - 칼 세이건

 나는 글을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학창 시절에 모의고사를 볼 때도 다른 과목에서는 시간이 남았지만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은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다. 읽고 싶은 책들은 많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인데 속도가 느리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글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얇은 책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읽어 온 책 중에서 나의 생각의 깊이를 키워준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책들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가브리엘 G.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은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 인상적인 작품들인데 모두 6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들이다. 이번에 나는 내 생각의 깊이를 키워 줄 책을 한 권 더 알게 되었다.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이 책은 사실 3년 전에 사 두었지만 막상 책장을 펼친 건 바로 얼마 전 일이다. 3년 동안 묵혀둔 이유는 이 책의 두께 때문이다. 책의 내용만 따져도 680 페이지나 되고 참고문헌이나 인덱스까지 포함하면 720페이지가 된다. 고로 책 자체가 엄청 무겁다. 그렇다 보니 막상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도전하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꼬박 한 달 하고도 보름이 걸렸다. 

 "코스모스"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우주에 관한 책이다.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에서부터 현재까지 우주에 관해 인간들이 알아낸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우주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중반까지는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 지구와 우주를 어떻게 바라봐왔는지를 보여준다. 일종의 과학의 역사책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싶다. 인류의 과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다루어서인지 이 책은 초판이 출판된 지 40여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사고하기 


 좋은 책은 독자에게 말을 건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두께와 방대한 내용을 통해서 칼 세이건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떤 말을 걸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책은 “우주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즘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그 하루 속에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족으로부터의 스트레스, 심지어는 길 가다 마주친 아무개 씨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등등 수많은 스트레스들이 있다. 일상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이 스트레스는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주를 떠올리면 이런 모든 일들이 참 하찮고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어차피 이 우주 속에서 찰나의 시간만큼 머물다 떠나는 존재들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리 주변에서의 일들이 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내가 한 방울의 빨간 잉크를 바다에 떨어뜨려서 온 바다를 빨간색으로 물들이려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스트레스들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지역갈등이나 인종 갈등, 국가 간의 갈등, 나아가 종교 간의 갈등 등이 참 우습도록 하찮게 여겨진다. 물론, 이것들 모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국 우리는 인류라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갈등들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전 우주에서 어쩌면 우리 인류가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 전체의 이익을, 더 나아가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 우리 지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과학자들이 청소년들에게 권장하는 책 1위"라고 한다. 아마도 과학자들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작은 갈등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닌 전 지구적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을까 싶다. 


잃어버린 1천 년


 기원후 500년 정도부터 약 1,500년 정도에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 인류의 과학은 약 1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춰서 있었다. 당시에 가장 발전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던 곳은 유럽이었는데,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유럽인들은 과학을 포기했다. 만약 유럽인들이 계속해서 과학을 발전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쯤 이미 외계인의 존재 여부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2020년의 기술이 이미 1020년에 융성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2020년 현재의 인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민주주의와 국가, 종교, 과학,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인류의 잃어버린 1천 년이라는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에 매우 안타깝지만 오히려 나는, 만약 우리가 그 시간을 멈춤이 아닌 나아감에 썼다면 현재의 인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 즐겁다. 


Breakthrough starshot project


 우주인은 존재할까? 우주에 관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우주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외계 지적 생명체” 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우주는 엄청나게 크다. 내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거대하다. 그런 어마어마한 우주의 한 변두리에 먼지보다도 작은 별에서 인간이 살고 있다. 아주 작은 박테리아에서부터 현재의 인간이 진화하기까지 고작 45억 년이 걸렸으니 나는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도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화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모스"에서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소개하는데, 이 방정식에 따르면 외계의 행성에서 기술문명이 발전했을 가능성은 꽤나 크다고 한다. 단, 우리 인류와 그 외계 생명체가 동시대에 살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기 어렵다. 만약 지금 현재 우리와는 정 반대편 (우주는 중심이 없기 때문에 반대편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순이긴 하지만)에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한들,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없다. 그들과 우리의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우리 은하계 내에서 생명체가 거주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대략 5천여 개의 별들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큰 곳을 골라서 탐사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알파센타우리별의 프록시마 B인데, 알파센타우리별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프록시마 B로 통신 및 촬영이 가능한 소형 탐사체를 발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계획이 이른바 “Breakthrough starshot project”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과학자들은 프록시마 B의 존재를 몰랐었지만 project를 시작하기로 한 이후에 거짓말처럼 이 행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사를 해본 결과, 프록시마 B의 환경이 지구와 굉장히 유사해서 생명체가 거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이곳으로 소형 탐사체들을 발사할 계획인데, 이 탐사체들을 반사율이 굉장히 높은 반사판의 가운데에 부착하여 마치 연 모양으로 만들어 쏘아 올려서 이 연에 레이저를 쏘는 방법으로 가속시킬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탐사체는 광속의 20%까지 가속이 가능하다고 하니, 프록시마 B까지 약 20여 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 생명체가 사는지 아닌지는 약 40여 년 후에는 알 수 있게 된다. 만약 그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들과 소통이 가능할까? 인류의 오랜 호기심이 풀릴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설렌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닐 디그레스 타이슨이 쓴 "날마다 천체물리"라는 책을 먼저 읽었었다. 우주에 관한 책이니만큼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조금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책은 우주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과학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읽어낸 만큼 보람도 크고 얻은 것도 많은 책이다.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나 또한 강력하게 추천하겠다.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책이 당신에게도 말을 걸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 나카자와 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