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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호 Apr 13. 2020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 나카자와 쇼고

긴장하세요. 방심하다 훅 갑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지속적인 발전으로 인해 불과 70여 년 만에 전 세계 12위의 소득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지만 옆 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약간 앞선 것이 아니라 꽤 많이. 같은 아시아 국가이자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우리를 현저히 앞선 그들. 우리는 그들의 현재에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은 현재 우리도 겪고 있는 혹은 곧 우리에게 닥쳐 올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비정규직이라서 감내해야만 했던 부당한 대우들, 견뎌야만 했던 차별들, 피할 수 없었던 수모들이 이제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명문대 중에 하나인 도쿄대를 졸업하고 기자와 아나운서로 일하던 저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엮어낸 책이다. 주로 저자가 직접 겪었거나 저자의 지인이 겪었던 일들 혹은 저자가 직접 취재를 다니던 중에 들었던 사례들을 모아놓았다.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실화이기에 충격적이고 씁쓸하다. 




 비정규직이라서 감당해야만 했던 가장 대표적인 일은 "위치에서의 차별"일 것이다. 정규직들은 비정규직들을 관리하는 소위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비정규직들의 업무를 전체적으로 지휘하며 그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관리하고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부 부도덕한 정규직들은 어렵고 곤란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들에게 그 일들을 떠넘기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규직이 해야만 하는 업무들을 비정규직들에게 떠넘기는 일은 다반사일뿐더러 비정규직들이 일궈낸 업무성과는 모두 정규직들에게 돌아간다. 비정규직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하지만 그들의 고용 구조 자체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더욱 최악인 상황은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비정규직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다. 아무리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오늘의 차별과 수모를 묵묵히 감내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기업은 이런 노동자들에게 희망고문을 자행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인턴제도"이다. 실무를 경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제도인데, 얼핏 들으면 노동자들을 배려한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인턴제도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무급"이다. 실무를 경험하고 배우는 조건으로 급여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실무를 소화해내는 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 말은 기업들이 실무를 소화하는 노동자들에게만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실무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 때까지 받는 교육에 대해서는 급여를 지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급 인턴제도"는 짧게는 한 달에서 보통은 3개월 정도 진행하는데,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3개월 동안 무급일지라도 앞으로 고정적인 수익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3개월 이후에 업무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해고된다는 데에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3개월 동안 무료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 된다. 거대한 대기업의 경우에는 대내외적인 기업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쉽사리 저지르지는 않지만 영세한 기업이나 동네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는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들은 대기업의 자회사 혹은 대기업에서 하청을 받는 하청업체 소속인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 노동자들을 알선해주는 "인재기업"이라는 곳이 존재한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그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면 슬쩍 발을 빼거나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려는 작태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누구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오로지 참아내는 것뿐이다. 옆 나라 일본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발생되고 있는 일인데 왠지 낯설지 않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노동자의 나이에 관한 차별이다. 저자는 기자와 아나운서로 근무하던 도중, 가족의 병간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퇴직하고 간병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어느덧 중년을 훌쩍 넘어버렸다. 중년을 넘긴 고학력자 남성이 비정규직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그는 본인의 위치를 비정규직들 중에서도 가장 하위로 평가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력이 1.2이고 건강검진 혈액수치 모두 정상인 데다가 100미터를 12초대로 주파하는 체력을 가진 저자는 지원서를 넣는 족족 거절당하기 일쑤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저 "관행"이라는 답변만 받는다고 한다. 나이 든 노동자는 사고의 위험성도 클뿐더러 젊은 노동자들에 비해 업무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이 이런 관행을 만든 주된 이유이겠다. 물론 저자의 경우는 예외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고령 노동자들이 젊은 노동자들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다거나 부상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에서는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고령 노동자들을 소위 "믿고 거르는" 관행이 만들어진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로 고령자들은 거만하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갈등을 유발한다거나, 나이가 들어 냄새가 난다거나, 고객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구직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지만 실화란다. 

 나는 "인턴"이라는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극 중에 로버트 드 니로는 senior internship을 통해 자신이 쓸모없는 퇴물이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하며 본인의 가치를 역설한다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버트 드 니로가 일본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아마 지원서를 넣자마자 퇴짜를 당할 것이다. 자신을 증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로. 인구는 점점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으며 예전에는 은퇴를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지금은 아직도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관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낭비되는 훌륭한 인재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저자가 꼬집은 점 중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모테나시"라고 불리는 과잉친절이다. 우리나라의 "손님이 왕"이라는 문화가 일본의 오모테나시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손님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에 걸맞은 가치의 서비스를 요구한다. 하지만 종종 손님들은 그들이 받은 서비스가 그들이 기대한 서비스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괴롭히곤 한다. 예를 들면, 고객은 짜장면 두 그릇에 탕수육까지 주문했다. 중식집은 손님이 주문한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을 제공했다. 하지만 고객은 군만두 서비스가 없다는 이유로 중식집 사장에게 화를 낸다. 군만두 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일 뿐이지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필수사항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어야 하는 이 상황이 정말로 어이가 없고 헛웃음이 나온다. 군만두를 먹고 싶었으면 군만두까지 같이 주문하지 그랬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목 끝까지 차 오르지만 억지로 꾸역꾸역 삼켜 넣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종류의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은 고객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과도할 정도의 친절을 제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상처를 헤아려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공익광고와 사회운동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 효과는 아직도 미비한 수준인 듯하다. 조용하고 질서를 잘 지키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노동자들이 과잉친절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오죽할까? 




 최근 발병한 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국민들의 외출을 통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위축된 소비는 다양한 곳에서 제2, 제3의 재앙을 재생산하고 있다. 소비가 줄어들다 보니 기업들은 생산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모자라서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강제하거나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자리를 잃고 있다. 수십 년을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노동자들은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생활비 걱정에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으로는 부족하다. 어디에서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 그런 그들 앞에 놓여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들이 향하게 될 곳은 결국은 비정규직 노동시장이다. 지금 당장은 자리를 지킨 사람들 역시 안심할 수 없다. 그들도 언젠가는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은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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