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이야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생생한 이야기”를 꼽겠다. 이 책은 소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밤새는 줄도 모르는 page turner” 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풀어내는 한 편의 거대한 이야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600 여 page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끝나는 것이 싫어질 만큼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렇다. “춘희”라는 이름의 거구를 가진 여성이 감옥에서 출소하면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는 후대에 벽돌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 소설 전체는 그녀가 어떻게 벽돌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거대한 이야기는 부잣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한 여인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모시던 양반 내외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불행히도 그 아들이 반편이다. 반편이 아들은 엄청나게 큰 성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몸종 여인은 반편이와 밤마다 정분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반 내외로 인해 그녀는 하인들에게 몰매를 맞고 그 집에서 쫓겨난다. 여인은 몸을 추스른 후, 한 밤중에 몰래 양반집으로 숨어 들어서 반편이를 꾀어내서 개울가에 그를 빠져 죽게 만든다. 이후 자취를 감춘 그녀는 “평대”라는 벽촌에서 작은 국밥집을 하며 노파가 될 때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노파에게 도대체 그 많은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묻자 노파는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돈을 모은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한편, 산골마을을 다니며 생선을 파는 생선장수는 어느 날 마을을 떠나려는 찰나,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소녀는 자신의 이름이 “금복”인데 아버지가 죽어 고아가 되었다며 생선장수에게 바다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생선장수는 금복을 바다로 데려다주고, 둘은 건어물 장사를 하며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금복은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고래를 보게 되고 고래의 엄청난 크기에 매료된다. 한편, 엄청난 수완으로 건어물 가게를 순식간에 키우고 생선장수에게 막대한 돈을 벌게 해 준 금복은, 우연히 만난 거구의 “걱정”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생선장수를 뒤로한 채 걱정과 살림을 차리게 된다. 그러던 중 걱정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금복은 그의 병시중을 들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칼자국”이라는 건달이 다가와 영화나 커피라는 신문물을 가르쳐주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처음 경험하는 신문물에 매료된 금복은 칼자국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녀는 걱정과 칼자국 모두를 잃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가 된 금복은 떠돌이가 된 지 4년 만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춘희”이다. 춘희는 엄청난 거구를 가지고 있었고 생김새는 걱정을 닮았다. 걱정과 헤어진 지 4년이 넘었으나 금복은 걱정의 아이를 출산한 것이다. 마침 주막을 운영하던 쌍둥이 자매를 만나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지내던 어느 날, “평대”라는 동네의 국밥집을 맡아 줄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춘희와 함께 평대로 향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노파가 숨겨놓은 막대한 돈을 발견하게 되고 이후의 사건들은 춘희를 벽돌의 여왕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 사건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책이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과 천명관의 “고래” 는 모두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르케스의 작품이야 전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천명관의 “고래” 도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서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생선장수에서부터 걱정이, 쌍둥이 자매, 칼자국을 거쳐 文 과의 인연을 지나 금복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부엔디아 가문에서 일어난 아우렐리아노들과 아르카디오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또한, 두 소설 모두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는데, 이를 테면 이전에 죽은 인물을 다시 등장시킨다거나 혹은 등장인물들이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공중부양을 한다거나 무너지는 통나무 더미들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일 등)을 한다는 점 등이 있겠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복선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각각의 요소들이 아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아쉽다. 거기에 더해서 이 거대한 이야기를 짧은 글 안에 담아내기에는 나의 필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도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따뜻한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시기에 집에만 있어서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심심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집어 들기를 권해본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