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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호 Nov 30. 2021

직장생활 8년 차, 사직서를 제출하다

세 번째 사직서, 첫 번째 퇴사

 어제 사표를 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2013년 12월부터 지금까지 꼭 8년 만이다. 나보다 먼저 퇴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지옥과도 같았던 회사인데도 막상 떠나려니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지는 않다고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서운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목표와 꿈을 향해 선택한 퇴사이지만 그들은 모두 똑같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다. 뭐 물론, 업무 능력을 어느 정도는 인정받은 사람들이나 그런 것이고, 업무 능력이 부족하여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들 혹은 회사가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아 퇴사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다른 감정들이 남았을 것이다. 


 이번 사표는 이 회사에 제출하는 세 번째 사표이다. 나의 첫 사표는 사원 시절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2년 동안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힘들었다.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재미가 나름 좋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들을 하면서 회의감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몸도 너무 지쳤었다. 이때 나의 월평균 퇴근시간은 10시에서 11시 사이였다. 집까지는 회사에서 1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였고 8시 반까지 출근하기 위해서 집에서 늦어도 6시 50분 지하철을 타야만 했었다. 아침 6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새벽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는 일이 2년간 반복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축날 수밖에.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었다. 이 상태로 더는 업무를 이어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짜로 '회사를 그만둬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나 이렇게 힘드니까 좀 알아주세요' 정도의 의사표시 정도였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나의 힘든 상황을 이해해 준 팀장님께서 부사수를 영입해주면서 나의 사직서는 조용히 퇴짜를 맞았다. 

 나의 두 번째 사직서는 내 사수 때문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업무에 속도가 나자 사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업무를 넘겼다. 본인의 일까지. 당시에는 사수가 너무 야속하고 얄미웠다. 모든 일을 나에게 넘기고 본인은 6시 혹은 7시에 퇴근하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하루는 너무 야속하고 얄미워서 새벽 4시에 메일을 업무 메일을 남긴 적도 있었다. 당신이 떠넘긴 일 때문에 나는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는, 뭐 일종의 항의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상황이 전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사수 덕분에 일이 빨리 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배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퇴사를 결심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본 나는 회사에서 더 이상 잡을 수 없도록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결정한 퇴사여서인지 적당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작은 회사로 먼저 이직을 하고, 그 뒤에 적당한 곳을 노려보자'라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다른 회사에 합격했으니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팀장님이 막아섰다. 그는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 사수를 시킬 것이니 퇴사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그저 사수한테 혼나기 싫어서 이것저것 미리 배워갔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팀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셨었나 보다. 팀장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나를 만류했다. 결국 그들에게 설득당한 채로 두 번째 사직서도 조용히 퇴짜를 맞았다. 

 이번이 세 번째 사직서다. 나는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우수수 잘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곧 내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다른 회사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마침 좋은 자리도 있어서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준비를 하고 입사원서를 접수했다. 면접과 신체검사 등으로 한 달이 더 지났고 입사날짜 조율과 연봉협상을 거쳐 드디어 합격을 했다. 지난 2번의 시도를 통해 이직은 내가 힘들고 지친다고 선택하는 도망이 아니라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붙잡는 타이밍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세 번째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가 곧 퇴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아직은 어떤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드디어 이 회사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해방감에 지금은 그저 기분이 좋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오늘 아침에 출근해보니 나의 사표가 본부장 결재까지 완료되어 있었다. 왜 다른 서류 결재는 미적거리면서 내 사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결재완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 것 같았지만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곧 이곳을 탈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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