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웠다. 알파벳이라는 글자는 내게 꽤 흥미로운 존재였다. 알파벳으로 된 텍스트를 해석하고 있으면 어렸을 적 봤던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에서 복잡한 암호를 해독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영어 성적은 자연히 올라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에 관해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문법 같은 것은 아예 몰랐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의 텍스트는 단어의 뜻만 잘 알고 있으면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그려내는 식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문법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문법 공부를 별도로 해야만 했고, 그 시간은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고민 끝에 나는 과감하게 문법을 포기하고 수시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문제집을 풀 때에도 문법 문제는 풀지 않았다. 오로지 텍스트만 읽고 이해했다. 내가 정시를 포기하고 수시에 올 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 당시에 영어라는 언어 자체는 단지 communication 을 위한 도구일 뿐이므로 문법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방법은 적어도 나에게는 제대로 적중했고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나는 겁도 없이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 문법….문법…. >
전공 수업은 대다수가 소설이나 시를 읽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설 시간은 나에게는 더 없이 흥미로운 시간이었지만 문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나에게 시를 읽는 시간은 너무나 힘든 고역이었다. 그 당시에 내 문법 수준은 중학생보다 못했기 때문에 운율에 따라 어순이 마구 바뀌는 시는 너무나도 힘든 산이었다. 영어는 내게 더 이상 암호를 해독하는 느낌을 주는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로 다가왔다. 꾸역꾸역 하긴 했지만 지금도 참 힘든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문법으로 고생했던 시간은 또 있었다. 토익을 준비할 때였다. 토익에서는 문법 문제의 비중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문법을 포기하고는 고득점을 내기 어려웠다. 더욱이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졸업 논문을 쓰거나 토익 점수를 제출해야 했고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다 보니 학교에서 요구하는 토익 점수는 꽤 높았다. 당시에 우리 과에서는 논문 써서 졸업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논문 쓰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그러자면 이번만큼은 반드시 문법이라는 산에 맞서야 했다. 다행히도 토익 문법에는 일정한 규칙들이 존재했고 나는 그 규칙들에 차츰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part 5/6 가 스피드퀴즈처럼 느껴졌다. 이 무렵에 아는 선배의 소개로 YBM 에서 토익 조교를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알바비는 없지만 수업료와 교재가 공짜라고 했다. 돈이라도 아껴보자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남들을 가르치기 위해 더 빡세게 공부했더니 실력이 자연스레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마음 고생이 심했었는데 결국에는 좋은 점수가 나와서 토익을 접었다. 이후, 나의 문법 실력은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뒷걸음질 쳤다.
< 듣기에서의 좌절 >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했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다. 초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마침내 2012년 3월에 호주로 떠났다. 나의 워킹 홀리데이의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영어 실력을 쌓는 것이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 워킹 홀리데이로 2-3천 만원을 벌어왔다는 사람들의 인터넷 후기를 종종 봤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외국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일이었고, 영어를 잘 하게 되어서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쪽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나는 내 모든 시간과 돈을 영어공부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호주에 도착한 얼마 뒤, 나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게 되었다. 한식 레스토랑이긴 하지만 손님들의 80% 이상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쓸 기회가 많았다. 나는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레스토랑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영어공부를 했다. 점심시간에도 식사를 마치면 바로 영어 공부를 했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쿵푸팬더를 쉐도잉 했다. 당시에 인터넷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쉐도잉하는 것이 좋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매주 주말마다 2시간씩 과외를 받기도 했다. 천천히 영어에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 내가 영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영어로 꿈을 꾸게 되었고, 무언가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당시에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조금씩 실력이 늘자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출근해서 점심 장사를 하던 중에 한 여성 손님이 찾아왔다. 그 전에도 몇 번 본 사람이라 눈에 익었다. 평소와 같이 그녀에게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를 물어봤는데 갑자기 그녀가 무언가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가 하는 말을 거의 20%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다시 말해달라는 부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결국 나는 끝까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화가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가버렸다. 지금 떠올려도 눈 앞이 아찔해지는 기억이다.
나는 이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영어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자만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학원에 들어가서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까지 모아 온 돈을 모조리 털어서 어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등록한 어학원은 브리즈번에서 2번째로 비싼 어학원이었는데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한국인이 가장 적었다. 어학원에 입학하자마자 치룬 첫 레벨 테스트에서 intermediate 가 나왔다. 더 높은 레벨이 나오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자만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월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담당 선생님에게 월반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내 수준에서는 약간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서 반을 옮겼고 이 곳에서 어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2달 정도를 보냈다. 내가 졸업할 때 선생님께서는 내가 class quality 를 높여줬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내가 있던 반은 Upper intermediate class 였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그 보다 더 위인 Advanced level 정도라고 칭찬해주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모두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그들도 나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학원의 특성상 매주 친구들이 졸업을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 직접 이렇게 누군가를 칭찬하는 광경은 처음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외국인 선생님에게 이 정도의 칭찬을 듣다니 !! 더군다나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게도 인정을 받다니 !! 그러자 내 안에 잠자던 자만심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의 실력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행히도 나의 이런 자만심은 단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산산이 부서졌다. 졸업식을 준비하던 중에 선생님들끼리 얘기하는 것이 슬쩍 들려왔는데 그들이 단 3-4 문장을 말했는데도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 꽤 가까이 있었고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나는 그들을 듣지 못한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90% 이상 이해하던 나였다. 하지만 정작 native speakers 끼리 나눈 단 3-4 문장을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짜 영어는 그들과 내가 하는 대화가 아니라 그들끼리의 대화라는 것을. 가끔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들에게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해 주었다.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지만 내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을 왜 못했을까? 너무나도 부끄럽지만 나의 워킹 홀리데이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나는 황망한 마음으로 도망치듯 호주를 떠나왔다.
< 말하기에서의 좌절 >
꽤 운이 좋았던 탓에 무역회사에 해외영업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 회사에서 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어느덧 6년째다. 직무가 해외영업이다 보니 영어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전체 업무의 70% 정도 된다.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매일 5.6시간을 영어와 마주하며 지낸다. 이대로 6년째이니 주말 빼고 계산해도 대략 8,700시간이 넘는다. 하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나의 영어 실력은 단연코 늘지 않았다. 입사했던 그때 그대로이다. 오히려 그때보다 못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실력이 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routine 이다. 사실 내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매우 제한적이다. 새로운 문장이나 새로운 단어를 쓸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그렇다 보니 매일 비슷한 문장들을 단어만 약간씩 바꿔가며 사용하게 되었고 나의 영어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이 바뀌면서변화가 찾아왔다. 중국에 있는 agent 와 direct 로 working 하게 된 것이다. 중국에 있는 나의 agent 는 인도사람이다. 인도식 영어는 내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신박한 발음이라 알아듣기가 매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성미가 급해서 나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한다.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대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말문이 턱턱 막힌다. 머릿속에서는 문장들이 떠다니는데 막상 입으로는, 소리로는 나오지 않았다. 영어로 말 한마디 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여태 모르고 살았다. 이와 비슷한 하루가 일 주일쯤 반복되었을 무렵,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간의 나태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 새로운 시작 >
이제 나는 새로운 시작점에 섰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영화와 미드를 쉐도잉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이 방법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핸드폰들은 왠만한 미드 한 두 시즌은 통째로 들어가고도 용량이 남는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영화 “인턴” 과 미드 “굿 플레이스”이다. 딱히 이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는 없다. 그냥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난 이렇게 잔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평화로운 장르를 좋아한다. 더군다나 이 작품들은 일상적인 대화가 많고 말이 빠르지 않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덜 빠르다는 의미이다). 이 작품들을 핸드폰에 넣어두고 출퇴근 시간에 늘 반복 청취한다. 나에게 시급한 것은 듣기이기 때문에 우선 듣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중이다. 집에서는 본격적으로 따라 말하기를 한다. 배우들과 같은 속도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따라 말한다. 쉐도잉을 할 때면 나는 내 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다. 분명 머리로는 배우와 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데 실제로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혀가 마비된 사람의 말소리 같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 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해 좌절하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게으름을 포기하면 영어를 얻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는 게으름을 포기했다. 즐겁게 영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게으름을 포기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