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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Feb 08. 2022

찬란한 학창 시절로, 정독 도서관

그리워할 것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겨울의 정독도서관은 추웠다. 2월 초,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날이었다. 습기 찬 마스크 너머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이 시렸다. 추위를 위로하듯이 하늘은 쨍하고 햇살은 따뜻했다.


  이 전에 정독도서관을 갔던 건 10년도 전, 고등학생 때였다. 수능 특강을 한 보따름 들고 가서 공부했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푸른 등나무와 교정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정독도서관이 향수로 가득한 곳인지도 몰랐다.


  정독도서관은 돌아갈 수 없는 학창 시절을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독도서관 건물은 도서관이 되기 전에 고등학교였다. 복도, 사물함, 계단, 창문까지. 특별하지 않은 학교 건물이 옛날이야기를 불러온다. 잊고 있던 고등학교 친구들의 이름과 까막득한 얼굴이 잠깐 떠오른다.


  정독도서관은 그리움을 불러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학창 시절을 닮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닌 공간.  사라지는 것들이 자꾸 떠오르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복도와 계단에 붙어있던 ‘정숙’라는 팻말, 넘어지면 무릎이 까지던 계단, 발이 시려 담요로 교복 치마를 꽁꽁 둘렀던 겨울 교실이 기억난다. 모든 순간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며 그리움을 불러온다.


  3관의 3 열람실에 앉았다. 10년도 더 전, 수능을 공부하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없다. 고등학생이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등학생 모습과 거리가 멀다. 투명하고 순수한, 청순한 아름다움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학창 시절은 찬란했다. 감정을 날 것으로 느꼈고 꾸미거나 숨기지 않았다. 기쁘면 웃음이 났고 화가 나면 소리쳤다. 감정은 하늘을 날기도 바닥을 치기도 했고 주변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는 만큼 사랑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안정적이고 감정도 관계도 무난하다. 가끔 그때의 열정과 날 것의 감정이 그립기도 하다.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면 글쎄, 그건 아니다. 그때를 거쳤기에 지금이 있고 이제는 날 것의 감정보다 무난한 하루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두어 시간 열람실에 앉아 있다 보니 발이 시렸다. 내복에 운동화에 패딩까지 따뜻하게 입고 왔지만 교실의 여전했다. 짐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정독도서관은 청량하다.



  정독도서관을 나왔을 때 교정에 홀로 선 눈사람을 보았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볕은 따뜻해 눈사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워할 것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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