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는 싱가포르의 색깔은?
싱가포르에 오기 전,
'싱가포르'하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높은 마천루와 화려한 건물을 떠올렸다.
색깔로는 푸르거나 회색, 또는 야경을 가득 채우는 주황색을 떠올렸다.
아시아에서 손에 꼽히게 발전한 나라이자 금융 허브와 다국적 기업의 천국.
싱가포르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도시' '높은 건물'이 전부였다.
무언가를 잘 모른다면, 환상을 갖기 쉽다.
직접 보고 경험하기 전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그 대상을 보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름 가깝고 익숙한 나라다.
건물에 뚜껑이 덮여있는 마리나 베리 샌드나 머라이언 동상, 슈퍼 나무의 이미지는
싱가포르에 가 본 적이 없더라도 익숙하다.
2023년 5월 말, 처음으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숙소는 도심에서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가격이 합리적인 숙소를 고르다 보니까 도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숙소를 고를 때 사람마다 중요한 부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경관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넓고 편안한 침대,
누군가는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욕조가 있어야만 한다.
나는 부엌이 있는 숙소를 좋아한다.
부엌이 있는 곳은 식비를 아낄 수 있다.
싱가포르는 높은 물가로 유명한 만큼,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며 식비를 아끼려고 했다.
내가 선택한 숙소는 주변에 비해 저렴한 서비스 아파트였다.
저렴한 숙소라 그런지 화장실 휴지를 딱 하나만 주었고, 물은 체크인하는 날만 주었다.
근처 마트에서 화장실 휴지를 사면서, 휴지를 주지 않는 건 너무했다고 생각했지만
숙박비가 현저히 저렴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싱가포르에서 아침을 맞은 첫날,
날씨가 좋았다.
아침에는 숙소에서 일을 하고, 점심때가 돼서 밖으로 나갔다.
숙소 주변에 점심 먹을 곳을 찾으면서 걸어 다녔다.
나는 싱가포르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어디를 가도 차가운 유리 건물과 고층 마천루가 가득할 거라는 착각이었다.
내가 만난 싱가포르는 오래된 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파스텔 색깔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아케이드 뒤에 줄지은 상점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었고
오래된 2~3층 건물은 빈티지했다.
아파트에 걸린 빨래는 정겨웠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자칫 무거운 느낌을 줄 수 있는데
라임색, 레모색, 파스텔 분홍색으로 산뜻했다.
나무는 푸르렀고, 햇빛은 쨍했다.
싱가포르의 낯선 모습에 감탄하던 때, 배가 꼬르륵 울었다.
점심을 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못 끝낸 일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점심을 먹고 일을 끝내고...
내일에 다시 와서 천천히 걸으며 더 감상하겠다고 다짐했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내일 오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