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만난 싱가포르
싱가포르 여행 셋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일주일 여행 중에 하루가 비가 오다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늘은 아크릴처럼 텁텁한 색깔이었고 공기는 축축했다.
무엇보다 싫은 건 빗물에 신발이 젖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하루종일 걷는데, 축축한 양말과 신발을 생각하면 마음이 찝찝했다.
인생에서 이런 날이 있다.
기대한 하룬데 결국 비가 와버리는 경우 말이다.
여행에서 비가 오거나, 단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거나.
운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날이 있다.
이런 날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하필 오늘', '왜 여행에 와서 비가 오는가'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여행 갔을 때 비가 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하루를 낭비한 것 같은 마음에 억울했다.
하긴, 항상 날씨가 좋을 수는 없지.
비가 오는 날도 흐린 날도 있을 수밖에 없다.
여러 번 실망 끝에 체념을 배웠다.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체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쁜 상황에서 좋은 점을 보려는 노력 끝에 체념이 나온다.
창밖의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신발 젖는 건 진짜 싫고, 여벌의 운동화도 없다.
집에 있을까, 고민하다가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갔다.
이날, 비 내린 싱가포르를 만났다.
비에 젖은 싱가포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햇빛 아래서 싱가포르의 쨍한 색감이 빛났다면,
비에 젖은 싱가포르는 우수에 젖은 색감을 뽐냈다.
특히, 선물 같았던 광경.
비 내리는 날, 2층 버스의 가장 앞자리에서 본 싱가포르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