航.log 09 – 방향이 생긴 날

부제: 가끔은, 다시 표류

by sailog

항해는 조망되지 않더라도 방향은 감지된다.

살아 있는 항해란, 완결 없는 구조 속에서도 감각을 기록하려는 시도이다.


심연 속 어둠과 침묵, 압박에서 벗어나

포근한 햇살과 밝은 빛, 뱃전에 쓸려 가는 파도 소리 따위가

그를 맞이했겠지만,

수면으로 올라온 항해사를 맞이한 첫 감각은

'숨을 쉬어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음에 대한 자격이 허락된 순간이었다.

바다는 달라지지 않았다.

죄책감은 여전히 그를 따라와 끌어내릴 것이었고

심연 또한 변함없이 공포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미지의 공포와 분명한 감각의 공포를 구분할 줄 아는

그는 처음으로 방향을 감지하고 있었다.


항해사는 심연으로 침몰할 때마다

그 미지의 공포를 응시하며 감각화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짓눌리는 와중에도

방향을 잃고 수면을 향하면서도

자신이 가라앉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던 그 순간에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필 줄 아는 자가 된 그는

기억 속에서

선한 의도와 책임을 분리해냈고,

왔던 길을 되짚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면으로 올라온 항해사를 맞이하는 첫 호흡 뒤로

뱃전에 쓸려가는 파도 소리가

고요히 그를 감쌌다.


배에 오른 항해사는

배가 수면을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하루 동안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키를 잡았다.

정처가 없음은 같았으나,

풍랑에 따라 뱃길이 이리저리 꺾이는 와중에도

나름대로 조타하는 초보 항해사는

어쨌든,

심연의 공포를 아는 어엿한 한 명의 항해사였다.




말 없는 외로움조차, 삶의 여백으로 자리합니다.

혹시 작은 파동이라도 일었다면, 안부를 남겨주세요.

우리는 서로 다른 망설임 속에서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땠나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