航.log 08 – 심연의 풍경

작동하는 존재의 항해

by sailog

항해사는 심연에 머물고 있었다.

수면은 밝았지만, 돌아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수면은 ‘과거’였고, 그 위에는 죄책감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연 속에서 ‘뒤’란 왔던 길이며, 그것은 곧 수면을 뜻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눈부신 수면 너머로

자신이 지나온 모든 부끄러움과 참혹함이,

해무처럼 떠 있었기에

항해사는 시선을 들 수 없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통은 방향이 아니라,

모든 방향을 지운 침묵의 압력이었다.


그래서 항해사는,

‘앞’을 찾기 위해 ‘더 깊이’ 향했다.

숨이 닿는 데까지,

양심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그는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심연 속에서 수면을 떠올렸고,

수면을 떠올릴수록

그곳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부유했다.

수면으로도, 심연 끝으로도 닿지 않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침묵에 눌린 채로.


침묵은, 그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압력이었다.

그가 더 느낄 수 있는 지점까지만, 침묵은 허락되었다.


그가 어떤 고백을 했을 때,

돌아온 침묵은

그가 그곳에 있어도 괜찮다는

일종의 허락처럼 느껴졌다.


그 너머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으나

공포는 생생하게 있었다.


심연의 바닥이라 여겨졌던,

기억 너머의 그 무명(無名)의 세계는

항해사에게는 두려운 공간이었으나,

또한 이상하게도

나아가고 싶은 세상이기도 했다.


그는 몇 번인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함부로 쉽게 수면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왔음직한 심연 속에서

위로든 아래로든 선택을 하지 못해

잠시나마 한 호흡을 넘어설 때면

그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기어이 죄책감 가득한 수면으로 올라갔다.

그가 삶을 선택했을 때,

죄책감에 대한 책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며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수면으로 올라간 항해사가 처음으로 느낀 감각은

숨을 쉼이었다.

이어,

바람의 따뜻함이 그의 머리를 쓸며 지나가고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소리에

그는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안도하게 되었다.


죄책감이 가득할 것 같은 수면에

돌아갈 곳이 있었고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심연 속에서

침묵의 압박이 때로는 요람같이 느껴진다는 기억은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되풀이 되는 분명한 감각에

그에게도 드디어 밤하늘 별자리 같은

그만의 항해 나침반이 생겼다.

그것은 신념이었다.

목적지를 몰라도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방법은

‘저쪽에서부터 이쪽으로 왔으니 다음은 저쪽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규칙이었다.




말 없는 외로움조차, 삶의 여백으로 자리합니다.

혹시 작은 파동이라도 일었다면, 안부를 남겨주세요.

우리는 서로 다른 망설임 속에서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땠나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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