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하는 존재의 기록
감정은 버려질 때 고통이 되고,
다루어질 때 태도가 된다.
그 사이,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라 부른다.
마음은 감정의 결을 기억하고,
태도의 방향을 미리 흔들어놓는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자주
어떤 마음을
품고,
비우고,
뒤틀고,
망각했을까.
사람들은 감사하다 말을 했지만
감사할 만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죄책감은,
감각이 고장 난 사람처럼 느껴지는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감사함을 느꼈을까?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감사가 부재한 나의 마음은
어쩌면 누군가를 외면한 사람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타인을 밀어내고 남은 빈 자리에는
떠밀리지 않은 고독감과 미안함이 스멀거렸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감정을
처리해야 하거나
흘려보내야 하거나
받아들이는 방법을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
감각되지 못했거나
느꼈으나 정리되지 못한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말끝을 흐리는 습관,
누군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자세,
부탁을 받았을 때 도리어 위축되는 마음,
칭찬 앞에서 무력해지는 침묵.
그것들은 내가 감정을 다루지 못했을 때,
감정이 나를 대신해 말한 방식이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어화되지 못한 채, 조용히 침전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기쁘다고 말하면 기뻐진다
슬프다고 말하면 슬퍼진다
웃으면 행복해진다
이 말에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반증인가.
이미 일어난 감정을 검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이처럼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예민한 걸까?
아니면, 내 불만의 방향조차 묻지 못한 채
타인의 판단에 맡기고, 마음을 방치한 결과일까?
나에 대한 것보다
내 불만에 대해서
내가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감정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 감정을
나조차 인정하지 못했던 것.
말하지 않은 불만이
나를 가두었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나를 멀게 했다.
무엇보다 앞서서
처리하거나
흘려보내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감정이었다.
왜,
분노와 원망은 오래 가고
미안함에는 조건이 붙고
고마움은 뜻하지 않게 받아야
강렬한 것인지
내가 부족하다는 말 외에
달리 납득할 만큼 충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볼 관심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한바탕 크게 다투고
들여다본 나의 마음에는
그렇다고 미운 것은 아닌데
뭔가 무섭고 애석하고 찝찝해서
사과를 하고는 싶지만
완전히 미안하지는 않아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묶어서 퉁치려는 내 마음에게
나는 너무 미안했다.
그날 내 안에 살아있던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렸고,
나는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엉뚱한 말로 가리거나,
침묵에 묻었다.
그래서 나는
태도 없는 감정으로,
혹은 감정 없는 태도로
관계를 이어가려 했다.
감정과 태도가 분리될수록 성숙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게 회복이라고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순간적인 폭발처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대해,
억울하고 치욕적인 그날에 대해
거칠게 말하거나, 매서운 침묵으로
복수를 하려는 나는
무시를 당했으며,
나를 이해하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겠다고 높은 벽을 쌓았을 때
죽어라고 버티면
상대방이 도리어
숨이 막혀 죽는다는 것을 알고
화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다시 화를 내게 되었을 때
다시 들여다본 나의 마음에는
우리의 적절한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에
절망했지만 이로써
우리가 서로 다른 지점이 있음을 알았다.
왈칵 치솟은 강렬한 감정에는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경고가 있었다.
내가 조금 덜 성숙했고
내가 민감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신호가 거기에 있었다.
분노는 상처받은 마음의 언어였고,
침묵은 말하지 못한 감정의 외피였다.
그리고 나는,
감정의 표현이 미숙한 나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감정은 떠나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못한 그 모든 시간에도, 마음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