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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ilorjeong Mar 27. 2023

요트 선주로 가는 길

세일링 일지 (2022. 10. 9. 김포 아라마리나 레이저 세일링)

 세일링 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을 맞아 일찌감치부터 파트너와 주말 세일링 일정을 잡았다. 휴일이 끼어있어 3일 연속 세일링을 해보자라고 약속을 하고 둘째 날은 1인승 딩기 요트를 타러 가기로 했다. 둘째 날 아침 8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제 세일링을 오래 했지만 미풍이었어서 뻐근함 없이 몸은 가볍게 일으켜졌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커튼을 걷었는데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던 비 예보가 오늘은 진짜였다. 파트너에게 바로 톡을 보냈다.

"비와ㅠㅠ"

"많이 와?"

"아니. 근데 하루종일 온대"

"일단 고!"

어차피 장댓비가 쏟아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갈 생각이었다. 우리에겐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정도는 막아줄 수 있는 고어텍스 스모크도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반드시 세일링을 할 테야.


 오늘 타기로 한 1인승 딩기 요트, 일명 “레이저“ 또는 ”ILCA"는 올해 내가 처음 운영하게 된 배다. 레이저의 선주가 된 후 하버 나갈 때 선주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비 관리에 대한 부담이 없을 때는 내 몸뚱아리 준비만 잘하면 되었다. 세일링 하기 좋은 몸 컨디션을 만들고 (=전날 과음하지 않고) 바람 세기에 따라 그날 어떤 세일링 테크닉 연습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참고할만한 영상들을 보고 갔다. 하지만 내 배를 타러 갈 때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이전 세일링 때 부족하거나 모자란 장비가 있었다면 보완할 장비를 미리 마련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가야 했다. 그래야 함께 간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공적이고 즐거운 세일링을 할 수 있었다.


 오늘 할 일: 트래블러 시트교체, 메인블록 달기, 센터보드 연결


 요트장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와 파트너는 우리를 지켜줄 아디다스 고어텍스 스모크를 입고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트래블러 시트 교체하기. 트래블러시트는 새로 가져온 시트를 길이에 맞춰 자르고 속심을 꺼내고 기존 세팅되어 있던 모양대로 교체해서 달았다. 두 번째, 메인블록 달기. 메인블록은 저번에 박았던 EYE STRAP(눈처럼 구멍이 2개 나있는 요트부속)을 빼고 샤클을 끼워 다시 나사를 박았다. 그리고 그 위에 스프링과 메인블록을 연결했다. 세 번째, 센터보드 연결하기. 센터보드도 파트너가 구해준  후크에 연결했지만 세일링 해보니 숏코드 (센터보드를 연결하는 고무줄 재질의 시트)가 붐뱅에 걸렸다. 세일링 후 숏커드를 마스트 하단 블록에 연결하는 것으로 범장 방식을 변경했다. 이렇게 세일링을 하다 보면 항상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센터보드의 경우 생각해 간 방법이 100점이 아니었고, 그럼 다시 100점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을 수정하고 가능한 바로 실행해 본다. 이게 너무 재미있다.

  

(왼쪽부터) 가을비 따위엔 끄떡없는 고어텍스 스모크, 새로 교체한 트래블러 시트, 나사로 고정시킨 메인블럭

 마리나에 왔으면 세일링도 해야지. 작업을 마치고 바로 세일링을 시작했다. 4~5노트 정도의 약한 바람이라 약한 바람에 범주 방향을 바꾸는 테크닉인 롤태킹, 롤자이빙 연습을 했다. 롤태킹은 대충 느낌이라도 알겠는데, 롤 자이빙은 한 번도 성공을 못했다.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다음 세일링 전까지 롤자이빙 영상 찾아보고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롤자이빙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세일링 하다 보니 메인시트가 너무 두껍고 비에 젖으니 시트가 무거워져 미풍에 세일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럼 다음번 세일링 때는 보다 얇고 가벼운 시트를 구해와 교체해야 한다. 이렇게 다음 세일링 때 할 일들이 생겼다.


다음 세일링 준비 : 롤자이빙 영상 공부, 메인시트 얇은 것으로 교체


(왼쪽부터) 맞바람 타는 파트너, 우천 세일링 모습 (다음 세일링 때 꼭 배를 닦아야겠다.. 할일 추가..)

   요트에 입문한 지 15년쯤 되었는데 팀에서 다 같이 배를 차터하고 유지 관리를 해온 것 외에 내가 온전히 배를 소유하고 책임을 지게 된 것은 처음이다. 요트를 타다 보면 내 요트가 갖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인데 적지 않은 투자 비용과 쉽지 않은 유지관리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15년 만에 1인승 딩기 요트를 운영해 보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내게 생겼다. 로망으로 가지고 있는 큰 요트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장비 관리에 대한 경험뿐 아니라 선주로서 배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레이저를 통해서 배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큰 배는 섣불리 시작했다가 부담감에 압도당할 수 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딩기요트로 시작하게 된 것이 운이 좋았다. 차곡차곡 쌓인 경험들이 양분이 되어 훗날에는 4인승, 5인승 킬보트 요트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큰 그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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