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링 일지 (2023. 3. 19. 평택호. 470 세일링)
매년 3월이되고, 슬슬 햇살이 따뜻해지고 겨울내내 단일 교복이었던 패딩을 세탁소에 갖다주는 시기가오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세일링 갈때가 됐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3월의 따가운 봄햇살이 내리쬐자 열이 많은편인 나는 반팔티차림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급한 마음으로 파트너에게 연락을 했다. 그의 빈 주말을 찾아 셋째주 일요일 세일링 약속을 잡았다. (그의 MBTI는 ENFJ. 계획형이라 사전예약필수) 어차피 일년내내 매주 할 세일링이면서도 조급하게 약속을 잡는다. 그러면, 꽃샘추위가 온다.
세일링 가기로 한 주의 월요일, 시베리아 북풍이 다시 힘이 세졌는지 갑자기 추워졌다. 아침에 길을 나서니 다시 패딩을 꺼내입은 사람들이 둘에 한명은 보였다. 겨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나는 패딩도 성급하게 세탁소에 다 맡겨버려 따뜻한 옷이 없었다. 봄외투를 겹겹이 입고 춥다춥다를 연발했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다보니 주말 세일링이 걱정이 되었다. 몸에 물을 적시지 않아도되는 킬보트 세일링과 달리 470 딩기 세일링은 하반신까지는 무조건 물에 들어가야 한다. 3월에 물이 따듯하기를 기대하긴 어렵고 그나마 햇살이 뜨거우면 몸을 뎁혀줄 수 있는데 아직 공기에서도 찬기운만 가득했다. 작년을 돌아보니 작년에도 같은 때에 세일링갔다가 물에 빠져서 오들오들 떨고 온 기억이 났다.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후회하기는 늦었다. 이미 약속한 파트너에게 추위 따위에 굴복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수는 없었다. (그의 MBTI는 ENFJ.. 약속을 어기면 안된다) 이른 아침, 어김없이 우리는 출발했다.
매년 시즌 오픈 당일이 되면 긴장과 설렘, 기대가 공존한다. 겨우내 기다린 세일링을 하는 날이니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지난 몇 달간 겨울잠자며 몸을 쉬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잘 탈수 있을까 긴장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크다. 하지만 이 두 마음보다 더 큰 것은 사실 지난 블랙프라이데이에 구매한 새로운 세일링 아이템들을 개시할 기대감이다! 남들이 옷도 사고 가전제품도 사는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세일러들은 해외 세일링 브랜드 사이트를 누비며 득템의 기회를 노린다. MUSTO, ZHIK, Helly Hansen, Addidas Sailing 등의 영국, 호주, 미국의 해외 세일링 브랜드들이 나에게는 루이비통, 프라다만큼 설레는 브랜드 이름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일링 아이템들을 장착하고 이 아이들이 업그레이드 해 줄 나의 실력과 멋에 대한 기대도 잔뜩 안고 갔다.
도착 직후 오랜만에 뵈어 반가운 감독님과 선수분들께 인사드리고, 바로 장비점검에 들어갔다. 우리 보트도 지난 겨울을 잘 보낸것 같았다. 문제 없음을 확인한 후 범장을 마치고 470을 물에 띄웠다. 물에 들어가는 길에 마주한 3월의 강물은 역시 아직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호다닥 배에 올라타고 긴장된 마음으로 한손에 메인 세일 시트를, 한손에 러더를 잡았다. '오늘 제발 물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도 잊지 않았다. 세일링을 시작하면 우선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범주 코스를 찾아야 한다. 탔을때 배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풍하 코스를 범주하면서 파트너와 스핀 세일 셋업과 자이빙, 스핀세일 다운까지 호흡을 맞추어보았다. 자이빙은 범주 각도를 바꾸어 세일을 반대편으로 옮겨주고자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인데 3초간 버퍼링이 있긴 하였지만 무리 없이 해냈다. 다행이다, 나 안까먹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맞바람을 타고 가는 풍상 코스로 들어섰다. 러더를 밀어 텔테일 보며 범주 방향을 풍상각에 맞추고 트래블러 당기고 메인 세일 끝까지 당겨보았다. "오!" 속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파트너도 나도 겨울잠 자면서 받은 시청각 교육(유투x, 인스x그램) 덕분인지 작년 마지막 세일링보다도 훨씬 안정적으로 배가 플랫하게 유지되면서 속도가 났다. 작년의 경우 오른팔과 왼팔의 파워 차이가 심해 왼팔로 메인 세일을 당기는 포트택에서의 시팅이 힘들고 크루가 안정적으로 하이크아웃을 나갈 수 없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PT도 시작했는데 나름의 효과가 있는지 포트택에서도 안정적인 범주가 가능해졌다. 끝날때까지 안심하면 안되기에 지속되는 긴장감 속에서 바람, 코스, 밸런스, 서로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을 유심히 살폈다. 한번씩 프로세일러들의 유투X에서 본 것과 같이 배에 스피드가 나면서 크루와 나에게 물이 튀겼다. 우리 뭔가 잘하고 있는것 같다는 자신감과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너무 많았다. 풍상 범주 시 거스트가 지나간 후 순간적으로 배의 파워 즉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그 때 배의 밸런스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역힐이 되어 크루와 내가 다급하게 배 안으로 들어오고 속도가 죽어버리는 것이 반복되었다. 아마 메인 세일 트림을 잘해야하는 것 같은데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또 풍하 범주 자이빙 시 스키퍼(나)가 스핀 세일을 컨트롤 하는데 이 때 스핀세일이 꼭 바람을 계속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크루가 폴 세팅하는 동안 스핀 세일이 하늘에 동동 잘 떠있을 수 있는 스킬을 익혀야 한다. 체력도 작년보다 나아졌다고 했지만 10노트 이상의 쎈 바람에서 한시간 이상 타고나니 팔의 근육이 모두 털려버렸다. 2시간이 지난 뒤에는 잡고있던 메인시트를 갑자기 놓치는 불상사까지도 발생했다. 팔힘 기르기는 영원한 숙제다.
춥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팔 힘을 회복하고자 배 위에서 잠시 쉬고만 있어도 찬 바람과 추위가 느껴져 몸에 열을 내기 위해 계속 범주하고 팔을 혹사시켰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세일러는 꽃샘추위가 무색할만큼 이 날의 세일링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해서도 그렇고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연습하는 만큼 파트너와 호흡이 맞아가고 우리가 원하는 세일러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에 세일링할 맛이 났다. 두 시간 넘게 돌아오는 길 내내 올해 어떤 목표로 어떤 세일링을 하면 좋을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시즌을 빨리 시작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앞으로 불어올 따뜻한 바람에 대한 기대감을 한가득 안고. 아마도 나는 내년 3월에도 어김없이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