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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ilorjeong Jan 03. 2024

요트가 재미있는 이유

요트대회 참가후기 (23. 11. 서울특별시장배 ILCA6 클래스)



 인생에 가장 추웠던 순간을 겪고 온갖 번뇌에 시달리며 두번째 경기날은 맞이했다. 


 첫째 날 경기 성적은 4번의 경기 중 1,2,3,2등이었다. 둘째 날 예정된 경기는 3경기였다. 요트 시합은 여러 번의 경기를 치르고, 가장 낮은 등수의 경기는 점수 합산에서 제외할 수 있다. 첫날의 3등 경기 성적을 제외한다고 했을 때, 둘째 날 경기에서 1,1,1등을 하면 1등이었고 한 경기라도 1등을 하지 못하면 2등이 되는 상황이었다. 선두를 달리는 선수는 여름동안 해양훈련도 다녀오고 최근에 많은 대회를 참가하며 실력을 쌓아와서, 내가 모두 1등을 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가능성이 0이 아니기 때문에. 1등이 아니라도 당당한 2등이 되기 위해 얼음장 같이 추웠던 한강으로 다시 향해갔다.


 심기일전을 하며 첫째 날 경기를 스스로 되짚어보았다. 요트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앞서 나가고 있을 때, 절대 혼자 가지 말 것.

 국가대표 선수가 가르쳐 준 경기 운영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 해상의 상황은 변수가 넘쳐나기 때문에, 내 뒤를 따라오는 배와 함께 가야 비슷한 변수들을 가지고 견제하며 앞 순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요트는 기록경기가 아닌 순위 경쟁이기 때문에 다른 배들을 견제하여 1초라도 빨리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면 된다.


 어제의 경우 스타트를 먼저 하고도 뒤따라오는 배를 견제하지 않고 나의 길만 갔다. 그러니 다시 마크 앞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뒤처져있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은 시선을 상대 배에 고정하겠다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 내내 재밌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계속 서로를 견제하면서 가니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1] 스타트가 늦어 1 마크 풍상 코스에서 뒤처졌고 상대 배도 나를 견제하여 뒤쳐진 채로 1 마크까지 가게 되었다. 동호인 선수들은 마크 라운딩에서 실수가 많기 때문에 마크 라운딩이 기회라 생각하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최대한 마크 가까이서 라운딩 할 수 있는 코스를 잡았다. 마침 상대 배는 라운딩 하며 마크와 거리가 벌어졌다. 내 배가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마크터치를 할 “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마크 터치하지 않고 무사히 1 마크 라운딩을 성공시켰다.


2] 풍하 코스에서도 상대 배 견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앞서 가고 있었는데, 상대 배가 뒤에서 따라오며 내 배의 바람을 가로막자 내 배의 속도가 죽으면서 역전을 당했다. 이런 경우 뒤에 오는 상대 배를 주시하며 가까이 붙지 못하도록 범주 방향을 계속 바꿔줘야 한다.


3] 다시 풍상코스에서 나란히 범주하고 있었다. 마크가 가까워지는데 내가 먼저 태킹해야 상대 배가 태킹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크까지 최적의 코스로 최대한 늦게 태킹 하였다. 내가 태킹 한 즉시 상대 배도 태킹 했으나 마크까지 안전하게 앞서나갈 수 있었다.


4] 풍하 코스에서 상대 배가 앞서 갔다. 바람이 많이 죽어 역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뒤따라 갈 때의 가장 좋은 점은 코스를 앞서 가는 배의 범주 상태를 참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나가던 상대 배가 자이빙 실수를 했다. 바람이 많이 없자 코스 변경하여 바람을 더 받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코스 때문에 바람을 못 받는 것이 아닌 그냥 바람이 너무 없는 것이었고 자이빙 한 배는 마크까지 멀리 돌아가게 되었다. 나도 경험이 많지 않아 바람이 없으면 코스가 매우 헷갈린다. 미안하지만 앞에서 실수를 해주는(?) 바람에 나는 자이빙하지 않고 코스 그대로 역전하였다.


5] 순위가 걸린 마지막 경기 마지막 4 마크 라운딩에서, 내 배와 상대배가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두 배가 만나 오버랩* 되는 경우 마크로부터 3 정신* 내를 마크룸*이라 하고 이 마크룸에 먼저 도달한 배가 마크 라운딩의 우선권을 가진다. 다행히 마크룸에 내 배가 먼저 도달했다.


 나름 치열했던 순위 싸움 끝에 결국 마지막 경기에 1등으로 피니시하며 최종 경기 성적 1등이 확정되었다. 사실 상대 배는 학교 후배였다.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랑 너무 치열하게 경기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내심 한참 나이 많은 선배라 지기 싫은 마음도 컸다(ㅎ_ㅎ).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요트 경기의 재밌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즐거웠던 경기였다. 서로를 견제하지만 서로 모르는 것도 많아 경기하면서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의논하며 갔던 것도 재밌는 요소였다.


 첫째 날 얼음 인간이 되었던 것을 각성하며 내가 가진 모든 요트 용품을 동원해 추위에 대비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딩기 시합용 웻슈트뿐 아니라 킬보트 시합용 방풍바지를 껴입고, 손에 물에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 장갑 안에 라텍스 장갑을 껴입기도 했다. 요트는 장비빨이라는 말은 순도 99% 진실이어서, 몸이 덜 추우니 경기력이 올라갔다. 내 고성능 바지를 보고 후배 왈 직장인 선배의 장비빨이 가난한 대학생을 이겼다고 했는데,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지난 6월 양양 대회에서 실력 차이가 많았던 후배가 여름 새 일취월장해 온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후배들에게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공부와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고 각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요트 경기를 통해 성장을 이끄는 즐거운 경쟁에 대해 배워가는 것이 매우 뜻깊었다.


  여기까지, 요트 경기가 재밌는 이유다. 이번에도 나만 재밌었다고? 그렇다면 오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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