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빅토리아 데이’였다. BC주의 법정공휴일인 ‘빅토리아 데이’는 5월 25일 이전의 월요일. 캐나다의 법정공휴일은 캐나다 전역에 해당되는 법정공휴일에 주 정부 별 공휴일이 더해지는데, 우리나라 선거일처럼 몇 째 주 무슨 요일로 지정된 경우가 많다.(1월 1일 new year's day, 7월 1일 canada day, 11월 11일 remembrance day, 12월 25일 christmas day 등 날짜로 된 공휴일도 있다.) 우리나라 명절처럼 황금연휴는 없지만, 대부분의 법정공휴일이 금요일이나 월요일이기 때문에 long weekend로 불린다.
캐나다의 공휴일(이미지 출처 www.statutoryholidays.com)
BC 주는 지난 6일 ‘빅토리아 데이’를 기점으로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내린 봉쇄조치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에 따라 연휴에 2~6명의 인원이 모일 수 있게 되었고, 주립공원 주간 개방도 결정되었다. 또한 BC주 노동청(WorkSafeBC)의 안전가이드라인에 따라 식당, 이발소, 미용실, 박물관, 도서관, 부동산 등 영업이 재개되었다.
두 달 넘게 집콕 생활을 유지했던 우리 가족은, 이번 연휴에도 집에만 있기로 했다. 한국에서 코로나 19 조치가 완화된 5월 황금연휴를 기점으로 다시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 사건을 보니, 사람이 몰리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대신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 공원으로 잠깐 소풍 갈 것을 계획했다. 이곳에 온 후 첫 가족 나들이다.
long weekend 첫날과 둘째 날은 비가 왔다. 이런 날씨에는 외출이나 여행을 자제하게 될 테니까 코로나 19 확산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남편은 비가 캐나다 사람들의 아웃도어 사랑을 막지 못할 거란 의견을 냈다.
가족 소풍을 앞두고 석 달가량 미용실에 가지 못한 남편의 머리를 해결하기로 했다. 덥수룩해진 남편 머리는 옆머리에 머리핀을 꽂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연휴 기간 동안 일부 미용실이 문을 연다고 하지만, 코로나 19의 위협은 여전하기에 방문이 꺼려졌다. 무엇보다도 캐나다의 미용요금은 한국에 비해 착하지 않다. 미용뿐 아니라, 레스토랑, 배달 등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그에 따른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룰이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서비스 이용료는 옳다. 한국에서 누려왔던 생활 편의는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임금 덕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캐나다에서 살아가려면 인식의 틀을 바꿔야 했다.
우리 집 경제사정으로는 한국에서 살던 수준으로 문화생활을 꾸릴 수 없었다.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외식은 언감생심. 배달음식이나 투고도 선택지에서 없앴다. 다행히 식재료는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문한 음식은 인터넷과 유튜브 레시피로 해결하고 있다.
미용실도 마찬가지. 미의 기준도 문화권마다 다르다 보니, 서양 사람들이 운영하는 헤어숍에서 머리를 했다가는 뒷감당이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태리 남자들은 뒷머리 옆머리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윗머리는 길게 넘기는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태리 출신 헤어디자이너는 그런 머리를 가장 잘 자른다. 만약 남편이 그 머리를 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한인 헤어디자이너들의 우수한 솜씨 덕분에, 밴쿠버의 한인 헤어숍은 이용료가 비싸다. 남편은 같은 동양문화권이고, 미용기술 수준이 괜찮다고 알려진 일본인 헤어숍을 방문한 적 있다. 그 헤어디자이너가 역량이 부족했던 건지, 일본의 미용기술이 예전만 못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옆머리를 쥐 파먹은 것처럼 만든 이후에는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시행착오 끝에 지난 2월에 한인 헤어숍을 갔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최소 두 달에 한 번씩 머리를 다듬어야 하고, 흰머리가 많아 자주 염색을 해야 하는 나와, 두 딸의 머리손질까지 더하면 경제적 부담이 컸다.
결국 고심 끝에 직접 머리를 손질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손재주가 없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눈썰미도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그림 보며 종이접기, 설명서 따라 조립하기, 매뉴얼 읽으며 기계를 작동하기... 모두 꽝이었다. 눈썰미가 없다 보니, 가사수업 시간에 한복 저고리 만들기를 할 때는 옷본과 내가 만든 삐딱한 저고리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 화장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 눈썹을 짝짝이로 그려도, 아이라이너 굵기가 제각각이어도, 입술 라인이 지저분해져도 내 눈에는 괜찮았다.
이런 내가 셀프미용을 선언하니, 그날부터 남편의 한숨이 늘었다.
우선 유튜브를 검색하여 랜선 스승을 찾았다. 전문가들의 현란한 손놀림은 보는 재미는 있지만 주눅이 들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한 유튜버가 이발기(=바리깡, Hair clipper)로 아들 머리를 자르는 동영상을 발견했다. 해당 유튜버는 밥 아저씨의 “참 쉽죠잉~”처럼 손목 스냅만 사용할 줄 알면 누구든지 이발기로 기본 커트가 가능하다며 시범을 보였다.
동영상 시청으로 고조된 자신감이 사라지기 전에 이발기를 사러 갔다. 대형마트 미용 코너에 진열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미용실이 문을 닫아 코로나 커트가 유행이라더니, 셀프미용을 시도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남은 이발기 세트가 한 종류여서 의사결정 곤란을 겪지 않았다. 가격은 헤어숍 한번 갈 때 지불하는 비용이랑 엇비슷했다.
대형마트 미용 코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이발기 세트
연휴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 남편은 여전히 내키지 않아 하며 이발을 준비했다.
“내가 똥손인 건 맞는데, 한 열 번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지 않을까?”
“열 번이나 걸린다고?”
기함하는 남편에게 이 동네 사람들은 코로나 커트려니 하며 양해할 것이고, 회사 사람들은 재택근무 동안은 마주칠 일 없지 않느냐며 달랬다. 솜씨가 좋아지면 딸들 머리도 예쁘게 정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더니, 딸 바보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 실험에 참가하겠다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유튜버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이발기에 6mm 어댑터를 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동영상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얼추 꼴이 갖춰졌다. 옆머리용 어댑터로 바꾼 후 귀 방향을 따라 조금씩 머리를 밀었다. 처음에는 긴장으로 손이 떨렸는데, 반복하다 보니 감이 왔다. 예상보다 괜찮다 싶어 진 순간 자만이 밀려왔다. 이제 좀 할 만하다 싶어 어댑터를 3mm로 과감하게 바꿨다. 좀 더 섬세하게 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3mm 어댑터가 시원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자마자, 내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도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비명을 질렀다. 잔디 깎는 기계가 지나간 자리처럼 정사각형 자국이 나버린 것이다. 어쩐지, 잘 풀리더라니. 나는 연신 남편에게 미안하다 사과하며 사고를 수습했다. 살려야 한다. 머릿속에서 ‘하얀 거탑’ 주제가가 자동 재생되었다. 바닥 친 자신감은 회복되지 않았다. 손질할수록 엉망이 되는 것 같아 얼렁뚱땅 마무리를 했다. 뒷머리가 이상했지만, 해결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셀프미용 전
셀프미용 후
두 딸을 불러 품평을 부탁했다.
“귀만 안 잘렸으면 되지 뭐.”
“처음 치고는 봐줄 만 해. 미용 장인이 보면 어이없겠지만, 내 눈에는 나쁘지 않아.”
이것은 칭찬인가 욕인가.
머리를 감고 완성된 머리를 찬찬히 둘러본 남편은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다며 격려해 주었다. 나는 풀 죽은 목소리로 영 이상하면 모자 쓰고 다니라고 대답했다.
바깥에서 보니 어설픈 실력이 더욱 드러난다.
고대하던 첫(공식) 가족 소풍.
간단하게 유부초밥을 장만하여 동네 공원에 갔다. 연휴라고 다들 멀리 놀러 갔는지, 공원에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다. 눈부신 햇빛 아래에 다듬어지지 않은 남편 머리가 더욱 반짝거렸다. 어지간한 일에는 웃어넘기는 무던한 남편이 고맙다.
내년 이맘때는 셀프미용 솜씨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연휴에 온 가족이 예쁘게 머리 다듬고 나들이 갈 날을 꿈꾸며, 앞으로 일 년 간 용맹 정진해야지.
그래도 소풍은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