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향해 곧게 뻗은 초록 나무 사이로 함박눈이 내린다.
허리 병이 도진 남편을 대신하여 다운타운에 있는 한인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며칠 째 냉장고가 텅 비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외출할 엄두를 못 내는 나를 보며 그동안 얼마나 남편에게 의존해왔는지 깨달았다. 더 미루면 핑계만 쌓일 것 같아서 두 눈 질끈 감고 떠날 채비를 했다.
밴쿠버의 초여름은 생기가 가득하다.
움직이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몸을 이끌고 대문을 나섰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을 뜰 수 없는 날씨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주택가지만 시원하게 쭉쭉 자란 나무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푸릇푸릇 초여름의 생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청량한 푸른 바람 덕분에 무거웠던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라. 하늘에서 함박눈 같은 꽃가루가 내렸다. 난생처음 보는 장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캐나다는 꽃가루까지 스케일이 다르다고 감탄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꽃가루가 눈처럼 소복하게 쌓였다.
다운타운까지 가려면 도중에 버스를 한 차례 갈아타야 한다. 내릴 곳을 놓칠까 봐 바짝 긴장하며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환승 정류장에는 기다리는 승객이 많았다. 공용버스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좌석의 절반가량 ‘seat closed' 사인을 설치하여 운행 중. 만 차가 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20분가량 기다렸다. 다음 차도 놓치게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다음 버스에는 앉을자리가 있었다.
남편 따라 한 번 방문했던 한인마트를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겁이 났다. 두려움은 다운타운의 관문 격인 라이언스 게이트 브리지(Lions Gate Bidge)를 건널 때 절정으로 치달았다.
다운타운과 연결된 라이언스 게이트 브리지
스탠리 파크(Stanley Park)에서 바라본 밴쿠버 다운타운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인마트까지 잘 찾아갔으며, 장보기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귀가 길도 문제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맥이 탁 풀렸다. 짐 정리를 끝내고 침대로 기어 들어가 오후 내내 기절한 것처럼 잤다.
일어나고 나니 얼굴이 가렵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점점 붉은 기운이 번지더니 얼굴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려움은 목, 귀로 이어져 눈을 못 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온라인 밴쿠버 한인 카페를 검색해보니,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비염, 결막염, 두드러기 등 증상은 다양했다.
꽃가루의 주범은 코튼 우드라는 활엽수. 북미산 포플러 나무인 코튼 우드는 목화솜 같은 솜털 종자를 방출하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코튼 우드의 솜털을 보니 얼굴에 새싹이 돋아날 것 같았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내 모습을 큰딸이 그려줬다.
두드러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창문 밖에는 꾸준하게 꽃가루가 날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알레르기 약 먹고 푹 쉬기 밖에 방법이 없었다. 또다시 자가 격리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자 무기력이 밀려왔다.
꽃가루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억압된 감정 등 정신적 긴장 때문에 면역계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 <통증혁명>, 존 사노 -
‘통증혁명’이란 책을 추천받았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쉽게 상처를 받고 격분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분노를 억압한다. 열등감과 강한 자기애를 오가며 스스로에게 정서적 폭군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편한 것들은 외면하기 때문에 분노는 품위 없는 감정이라고 여기고 회피한다. 반면에 마음속에는 억압된 감정들을 의식으로 끌어내려는 강력한 성향도 존재한다. 저자에 따르면 통증의 역할은 숨겨진 감정들이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속임수다. 정신의 긴장이 몸으로 표출되면 환자는 내면을 살피지 못하고 신체의 통증에 관심을 갖는다. 저자는 이런 통증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감정적 문제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는 몸의 통증 만 한 것이 없다.’는 미국 만화 스누피의 대사를 인용하였다.
삶은 날씨와 같다. 화창할 때도 있지만 천둥 번개도 친다. 느닷없는 강풍에 터전을 잃어도 오늘 새로운 태양은 뜬다. 좋은 일도 궂은일도 자연의 순리다.
감정도 마찬가지. 우울, 외로움, 무기력, 분노, 슬픔도 기쁨, 즐거움, 유쾌함만큼 소중하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우울함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따돌렸던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온다. ‘부정적 감정’은 거부하고 ‘긍정적 감정’만 쫓는다면 성장할 수 없다. 그건 참된 행복이 아니다.
평생 살아왔던 땅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서걱거림은 당연하다. 식물도 분갈이를 하고 나면 몸살을 앓는데 인간은 오죽할까. 머리로는 아는데, 부정적인 감정이 수용되지 않는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조급증을 부른다. 모든 것이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한 기분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마음의 힘이 부족해 내 시계만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전문적인 의학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함부로 진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꽃가루에 대한 몸의 이상반응을 통해 딱딱해진 몸과 마음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다.
장보기가 뭐라고 그렇게 기를 썼을까. 정류장을 지나치고, 길 좀 헤매도 별 일 아닌데. 혼자 씩씩하게 배낭여행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노점에서 손짓 발짓 흥정해도 마냥 신이 났다. 실수도 즐거운 후일담 소재에 불과했다.
일상에 점수를 매길 필요 없는데. 밴쿠버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수행평가 치르는 학생의 심정으로 지냈음을 깨달았다. 어휴. 대체 누가 그런 걸 시켰던 걸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어디까지나 기분 탓이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쓸데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병을 샀다.
다 괜찮다. 안달복달하지 말자. 느려도 된다.
까짓.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적응하지 뭐.
만약 달팽이가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면,
즉 느릿느릿하게 걷지 않고 송골매처럼 빨리 날거나,
메뚜기들처럼 저 먼 데 까지 폴짝폴짝 뛰어다니거나,
벌처럼 우리 눈이 못 쫓아갈 정도로 날쌔게 날아다닌다면,
달팽이와 거북이의 만남은 절대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야.
-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
거북이를 만난 달팽이 (둘째 딸 솜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