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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킴 Jan 08. 2021

프롤로그: 시그널

방구석 몽상가 동료들에게

 난생처음, 물건 값을 깎아달라고 했다.      


 초보 이민자의 주머니 사정은 녹록지 않다. 돈 들어올 구멍은 정해져 있는데, 필요한 것은 자꾸 생긴다. 밴쿠버 한인 온라인 카페 장터가 고맙다. 밥그릇, 식탁, 아이들 2층 침대 등 살림살이를 그렇게 장만하고 있다. 둘째가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하여, 연습용 피아노를 구매하기 위해 카페 장터를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좁은 집에 마땅히 둘 곳도 없고, 운반도 쉽지 않으니 무거운 피아노는 거저 줘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디지털 피아노 판매 글이 올라왔다. 이동이 용이한 모델이었다. 물건 상태에 관하여 판매자와 몇 가지 질문이 오고 갔다. 거의 사용하지 않아 새것과 다름없었고,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도 적당하여 구매 의사를 밝혔다.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판매자 집이 여기서 꽤 먼 곳인데, 왔다 갔다 할 기름 값이라도 깎아 보면 어때?”


오 마이 갓, 구차하게 가격을 흥정하라는 얘기 인가?

마음의 소리가 얼굴에 다 드러났나 보다. 남편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덧붙였다.


“나는 회사에서 거래처와 매번 가격 협상을 해.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에게는 정당한 수순인 흥정이 진절머리 나게 싫다. 없이 산다고 실토하는 기분이 든다. 괜한 자격지심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협상의 연속이다.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른 이익 추구는 이치에 맞다. 타당한 의사 결정 활동을 거부해온 것은 상대방이 싫은 내색을 한다면 자존심에 금이 갈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근거 없는 불안이다. 협상 결렬은 상대방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저마다의 판단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설혹 누군가 결론 도출에 개인적인 감정을 섞었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몫, 그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다. 그러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상처를 받는 것은 난센스다. 머리로는 정리가 되는데, 그래도 하기 싫은 것은 하기 싫다.    

 


 평생 하기 싫은 것은 회피했다. 해야 할 것으로부터 도망친 대가는 훗날 비싼 이자를 물었다. 삶이 책임을 요구하는 순간은 반드시 왔다. 이번만큼은 예외였으면 싶지만 그런 마법은 리얼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공짜는 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손에 쥐려면 '피, 땀, 눈물'을 흘려야 한다. 하기 싫고 귀찮아도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애를 써도 기대하는 바를 얻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야속하지만 노력이 결과로 당연하게 귀결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용기를 내어 도전했더니 일이 뜻대로 술술 풀리더라.’는 전개는 전래동화에서나 가능하다. 어렵게 입을 떼어 가격 조정을 요청했지만, 대답은 "NO!" 쥐구멍은 어디 있더라. 쪽팔리지 않은 척하며 최초에 판매자가 제안한 가격으로 거래를 마무리했다. 가격을 깎았다고 체면까지 깎이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보다 창피함은 견딜 만했다.

 물론, 다음번에도 흥정을 시도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하루아침에 몰라볼 만큼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하기 싫은 것 앞에서는 주춤거리고 도주 기회를 엿볼 것이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체력과 에너지가 아직 있을 때, 하기 싫어서 미뤄뒀던 것들을 ‘미션 클리어’ 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그깟 흥정 한 번이, 이렇게 까지 거창할 일이냐고!


알뜰살뜰하고, 부지런하고, 명랑하고, 열정이 넘치며, 야무지고, 침착하고, 성실하고, 재기 발랄하며, 용기 있고, 끈기 있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의아할 것이다.  

안다. 당신의 의문이 지당하다는 것을.

고통이 두려워서 매사 도망 다니는 나 같은 가여운 영혼이 몇이나 되겠나. 이런 타고난 겁쟁이 몽상가들은 아픔 없는 곳을 찾아 헤맨다. 부처님도 진작 충고하셨지만 삶은 곧 고통이다. 하늘 아래 고통 없는 곳은 없다. 결국 이 겁쟁이 몽상가들이 숨을 공간은 자기 방구석뿐이다. 안타깝게도 언젠가는 세상의 악의와 공포가 방구석까지 밀고 들어온다. 창문 너머 풍경이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같다면, 후회해도 늦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 :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2019.12.24자 기사

지금, 방문을 열자. 쉽지 않겠지만 햇살 가득한 바깥으로 한 발 내디뎌 보자. 문 밖이 항상 위험하진 않다. 때론 무서운 살수의 공격을 받기도 하겠지만, 따스한 온기로 마음을 주고받을 귀인을 만날 수도 있다.     

이 글들은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겁쟁이 방구석 몽상가의 바깥세상 경험기가 될 것이다.


나의 방구석 몽상가 동료들이여.

이제는 밑도 끝도 없는 공상 세계에서 빠져나와, 함께 현실세계로 건너가 보자.

이 기록을 그대들에게 시그널로 보낸다.

찌릿, 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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