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일러킴 Jul 28. 2021

늦깎이 스시맨의 하루

 오전 10시 30분. 테이크아웃 스시전문점 주방 막내의 첫 일과는 밥 짓기다. 쌀과 밥물의 비율을 1대 1로 맞추고 전기밥솥에 밥을 안친 후 본격적으로 재료 준비에 돌입한다. 나는 튀김과 스시를 제외한 모든 메뉴, 그리고 기타 등등 담당자다. 기타 등등에는 주방장 보조, 설거지, 청소, 뒷정리를 비롯한 온갖 잡무가 포함된다.

 튀김은 새우, 얌(마의 일종으로 호박고구마와 비슷한 맛과 식감을 가졌다), 두부 순으로 진행되는데, 튀김재료가 바뀔 때마다 튀김옷의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얌과 두부에 비해 새우튀김용 튀김옷이 약간 더 묽어야 새우가 길고 반듯하게 잘 빠진다.


 튀김기의 온도가 화씨 350도가 되면, 밀가루를 씌운 새우 3마리 꼬리를 하나씩 검지, 중지, 약지 가운데 마디에 끼우고 튀김옷을 앞뒤로 입힌다. 튀김옷을 입힌 새우는 기름에 넣자마자 손목과 손가락 스냅을 이용하여 반대편까지 쭉 밀고 되돌아오기를 두 번 진행하고, 한 번 더 튀김옷을 입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새우 기름 목욕이 무서웠다. 튀김기 안에 들어가야 하는 손가락이 새우와 함께 튀겨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겁이 나서 몸과 뇌와 손가락이 동시에 굳었고 새우는 엉망으로 튀겨졌다. 수시로 새우 기름 목욕 동작을 시뮬레이션해봐도 막상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350도 기름 앞에서는 쫄보가 됐다. 3주가 지나고 튀김기에 손가락이 튀겨지진 않는다는 경험이 쌓이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한 요즘에도 새우튀김 시작 전에는 심호흡을 한다.


 얌은 새우만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재료가 아니지만, 여전히 난관은 존재한다. 튀김옷이 넓은 면 전체에 골고루 묻어야지,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튀긴 후 까만 땜빵이 생긴다. 땜빵 난 얌 튀김은 판매할 수 없기에 기름통 입수 직전 일일이 튀김옷 상황을 검사해야 한다. 몇 번씩 확인해도 가끔 튀김옷이 순식간에 흘러내려 땜빵 날 때가 있다. 억울해도 소용없다. 집으로 초대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게 아니다. 돈을 지불한 고객에게는 언제나 흠 없는 결과물을 제공해야 한다. 식당은 프로의 세계니까.


 두부튀김의 포인트는 ‘자르기’. 두부 한 모로 총 18개의 정육면체 조각을 내야 하는데 워낙 잘 부서지니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두부는 예쁘게 자르고, 튀길 때 서로 붙지 않도록 뜰채로 잘 뒤집어 주면 끝. 튀김 뒷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덧 점심 피크타임이다.


 주방 오더는 크게 뎀뿌라, 벤또, 돈부리, 우동, 기타 단품 등인데, 총메뉴는 서른 가지가 넘는다. 주방 벽에 각각의 메뉴를 만드는 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지만, 할 때마다 헷갈린다.  

실은 튀기는 중간중간에 오더가 들어오면 잠시 튀김을 멈추고 주문받은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양 손에 끈적끈적한 밀가루와 기름범벅인 상태에서 신속하게 손을 닦고 주방 오더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긴장하면 더욱 실수가 잦아지므로 해야 할 일을 연신 입으로 중얼거린다. 그래야 까먹지 않는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다.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가고 오후 1시 30분쯤 되면 점심 오더는 대략 갈무리된다. 개수대에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쌓여있다. 지금부터는 설거지의 시간이다. 고질적인 주부 습진 때문에 면장갑을 끼고 고무장갑을 사용해야 하는 처지지만, 스시용 밥솥을 비롯하여 맨손으로 닦아야 하는 몇몇 설거지 거리가 있다. 다른 설거지 거리들도 깨끗하게 닦아야 하지만, 맨손으로 닦아야 하는 것은 특히 더 꼼꼼하게 헹군다.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면 오후 2시. 사장님이 준비한 늦은 점심을 급히 먹는다.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인 2시 30분 전에 주방 정리를 완료해야 한다. 주방 바닥을 청소하고, 개수대와 주방 선반을 행주로 구석구석 닦은 후 깨끗하게 빨면 업무가 끝난다. 곧장 정류장으로 달려가면 2시 32분 버스를 탈 수 있다.


 집까지는 버스로 10분 거리다. 집에 도착해 서둘러 샤워하고 말단 스시맨에서 가정주부로 돌아온다. 아이들 하교 픽업 후 저녁을 차리고 남편이 퇴근하면 드디어 온 가족이 식탁 앞에 앉는다.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면 스시맨, 주부에 이어 최종적으로 작가로 변신한다. 밀린 원고를 쓰다 보면 밤 11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 6시 30분.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깬다. 몽롱한 정신으로 아이들과 남편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준비한다.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을 고집했던 아이들은 이젠 간편하게 먹고 싶단다. 도시락 메뉴는 샌드위치, 볶음밥, 파스타, 삼각 김밥, 유부초밥의 무한 반복이다. 가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지만 도시락을 쌀때마다 빈곤한 아이디어를 탓하게 된다.


 아이들을 차로 등교시키고, 집 근처 운동장을 달린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400m 트랙을 10바퀴 도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달리기가 끝나면 서둘러 채비를 하고 출근길에 나선다.


 오전 10시 30분. 또다시 늦깎이 스시맨의 하루가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