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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킴 Oct 26. 2021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대하여

“일은 힘들지 않으세요?”


스시전문점 쿡이 된 이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럭저럭 할만해요.”


할 말이 없어서 얼버무리는 대답이 아니다.

스시집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입소문과 일부 몰지각한 한인 업주들의 갑질 문제가 간간히 들려서인지, 아직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는 지인도 있다. 평생 사무직으로 살아온 사람이 과연 며칠이나 버틸까 싶었던 것 같다. 사장님도 “3개월은 채워 줘야 해요”라고 당부한 걸 보니, 어지간히 못 미더워 보였나 보다. 부엌살림을 전적으로 친정 엄마에게 의지했기에 칼 잡는 법도 모르는 주방 초보다. 몸 쓰는 일은 젬병에, 새로운 환경에서는 몸과 머리가 굳고, 긴장하면 실수가 잦아지며, 일머리도 없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인 초보 쿡은 어떻게 스시집에 적응해야 할까?



 

내가 근무 중인 테이크아웃 전문 스시집은 60대 초반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다. 자녀 교육을 위해 50살에 캐나다로 이민 온 사장님 부부는 원래 한국에서 대기업 중견 간부였다고 한다. 50살은 그간의 커리어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기 쉽지 않은 나이다. 사장님 부부는 밴쿠버에서 스시집을 개업할 때까지 주방 막내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웠다. 남자 사장님의 첫 직장은 중국집이었다. 한국에서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왔지만, 아무 경력도 없는 50살 중년 남자를 받아주는 일식집은 없었다. 이력서를 수십 군데 낸 후 겨우 중국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사장님은 하루 8시간씩 3개월간 온갖 채소를 썰었는데, 그곳에서 칼질의 기초는 모두 배웠다. 중국집에서 3개월의 경력은 일식집 취업의 발판이 됐다. 그동안은 본 척도 안하던 일식집들이 중국집 주방 경력 확인 후 즉시 채용했다.


“캐나다가 그렇더라고요. 기술 있고, 성실하게 일하면 먹고살아. 그러려면 한 가지 분야를 꾸준히 파는 게 중요해요. 여긴 학력, 나이, 성별, 자격증, 이런 거 안 봐요. 무조건 경력이야. 경력이 있으면 일 할 곳은 찾을 수 있어요. 이거 저거 재지 말고 일단 해요. 백날 준비해도 소용없어. 현장에서 부딪히며 몸으로 배워야지.”  


사장님이 스시집 주방 3년 만에 가게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주위에서 다들 말렸어요. 그렇게 덜컥 시작하면 큰일 난다고. 요즘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10년 전에는 스시집이 괜찮았거든요. 확신은 없었지만 믿음은 있었어요. 큰 욕심 내지 않고 기본 지키면서 착실하게만 하면 우리 가족 먹고살 수 있다고. 작은 가게지만 이것도 사업이잖아요. 막상 개업을 해보니 요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음식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손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하루도 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0년이 훌쩍 가버렸네요. 애들 학교도 졸업시켰고, 큰 부자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작은 집도 장만했고. 이젠 슬슬 은퇴를 고민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사장님 부부는 고용주라기보다는 먼저 이민을 온 인생 선배로서 견뎌내야 할 것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물론 스시집 주방일은 어렵다. 어제까지 길쭉하게 잘 빠졌던 새우튀김이 오늘은 뭉뚝하거나, 도마를 뚫어지게 바라봐도 파가 두껍게 어지면 즉시 지적을 받는다. 척하면 척 해내는 센스와 요령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아 서럽다. 시간이 필요한 거다. 나도 주방도 밴쿠버도 서로 익숙해지려면.




“일은 힘들지 않으세요?”


타인에게 위로받는다고 해서 ‘힘듦’이 저절로 사라지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힘듦’을 똑바로 마주해야 언젠가는 자연 소멸된다.

스시집 주방에서 배우는 것은 일식 요리만은 아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데, 그 법칙이 나만 예외일 리가 없다.

칼이 손에 익을 때까지, 낯선 캐나다 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들 때까지.

나는 지금 지루한 반복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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