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른 하루들이 모여 매일이 되고
- 고객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몇년전, 이직을 하며 센터장 인터뷰를 보러 갔던 한 회사에서
2차 인터뷰를 진행하시던 그 회사의 전무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순간 당황했다.
고객센터 일을 십수년간 해 오면서 과연 나는 즐거웠던 날이 있었던가.
보통 센터장이나 매니저 인터뷰에서 나오는 질문도 대략적인 기출문제가 있다.
- 콜 스파이크나 핸들링이 필요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게 있나요?
- 문제가 많은 직원은 어떻게 컨트롤 하시나요?
- 운영현안 중 가장 주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지표달성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과 노하우를 상황마다 다른 필드에 적용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수 있을까요?
등등등...
근데 가장 즐거웠던 일이라니.
까마득...
생각해 내야 했다.
을지로 한가운데에 있는 24층 이 건물의 어느 한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던진 화두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했다.
2-30초 가량의 어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다 생각난 게 있었다.
-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던 매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쳇바퀴돌듯> 같은 일이 지겹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고객센터만큼 같은 일이 매일 벌어질 수 없는 곳은 드물 것이다.
민원 고객이 넘쳐 나는 날이 있고,
평화롭게 넘어가는 날도 있고,
직원들의 퇴사를 막기 위해 면담만 하다 끝나는 날도 있고
고객사의 레포트만 하루종일 쓰다가 저녁이 되는 날도 있다.
직원들을 칭찬해주는 고객들에게 감동하다가
어느 날은 직원들의 상담을 오해하거나 트집잡는 고객들때문에 허무하기도 하다. .
이 다른 하루들이 모여 매일이 되고, 그 매일이 모여 나의 커리어가 되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보면 정작 가장 치열하게 일했던 건 센터장 업무를 수행할때가 아니라 중간관리자를 했던 교육팀장과 SV 시절이었다.
내 팀원들을 내 새끼라 부르며 센터를 뛰어 다니고 팀원들의 작은 한숨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함께 고민했던 시절.
그 시절 롤모델이었던 실장님 한분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 네가 십만원을 받고 십만원어치 일만 하면, 너는 십만원짜리밖에 될 수 없겠지.
하지만 십만원을 받고 백만원어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면 너는 천만원짜리가 될거야.
그땐 그 이야기를 들으며
' 일 더 시키는 방법도 스마트하시네...' 라고 입을 내밀었으나
이젠 알것 같다.
나를 가치있게 하는 것은 상급자나 고객이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것을 왜 모르고 있냐는
채근아닌 채근이었다는 것을.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매일.
다이나믹하다는 단어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을 센터의 아침은 어김없이 올 것이고 9시에는 또 ARS가 열리고
또 수천명의 고객들이 문의를 쏟아낼 내일. 그리고 또 다른 내일.
그런 매일을 모으며 고객과 함께 살아가는 곳.
나는 고객센터에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