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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Jun 10. 2023

개가 죽어서요.

-첫 만남-

첫 사진.

2개월 된 대박이. 첫 사무실 출근. 디자인 팀장님이 찍어주심.


부부가 운영하는 회사.

참 아킬래스 건이었습니다. 저는 늘 직원들 눈치를 봐야 했고, 대표의 눈치도 봐야 했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키워야 할 것 같고.


개를 사달라고 조르던 외동아들은 이미 초2 때부터 외롭다고 개를 키우자고 했지만, 개는 외로움을 타는 존재라서(개도 우울증 걸리는 거 아시죠?) 한참을 망설여. 

단번에 키운 것도 아니고, 초 2 때 졸랐을 때는 궁여지책으로 토끼를 키웠습니다.

2만 원에 킴스 가서 산 아이. 땡글이는 이후로도 11년 4개월을 살다가 갔습니다. 그때도 저는 몹시 울었고요.

토끼를 3년간 키우다가, 아....


기억나요.

초등학교 2학년 된 아이가 집에 와서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쓰담쓰담하면서 숙제를 하던 모습이.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외로움을 달래면서 살아갔던 사실이.

그런데 토끼는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고 합니다. 저도 알아요. 약간 취해서 들어와서 안으려 하면, 이것이 발버둥을 치며, 할퀴고 달아나는 것을.

그래도 토끼임에도 불구하고, 목욕도 시키고, 잘 말려주면 아무 탈이 없었어요.

집안에 야채가 남기 마련인데, 늘 땡글이를 주었지요. 덕분에 환경 보호는 제대로 한 듯요.

눈이 땡글 땡글 해서 땡글이입니다.


아이가 하나이다 보니, 모든 애완동물은 다 키웠던 듯요.

수족관의 물고기부터, 개구리, 소라게, 가재, 달팽이, 병아리...... 그리고 토끼에서 강쥐까지.

 

그런데 개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온전히 저의 몫이었죠.

알고 있어요. 그렇다는 걸. 아이는 한때이고 책임은 저 혼자만의 몫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어요.

그때 즈음.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오래됐어요.

사이가 안 좋은 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제가 이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 오래되었지요.

그래서 남편을 버리고, 개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이제 사랑은 남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개에게 주기로 한 거죠.

이 말을 이혼한 남편은 죽어라 싫어했지만, 사실인걸 어쩝니까.

여하튼 그렇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아이가 검색하고 알아보고 한 대형프리미엄 애견 전용 사이트에 잘 알려진 곳으로

양평으로 아이와 함께 운전을 해서 갔습니다. 물론 남편은 반대했죠. 그러거나 말거나.

양평이라 가까운 줄 알았는데, 가다 보니 이건, 거의 설악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겁니다.

겁나 멀었어요. 그리고 마주하게 된 곳.

그곳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허스키 아이들은 몹시도 큰데, 외면했습니다.

그 크기를 짐작하면, 제가 겁먹을까 봐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거기는 아이를 함부로 못 만지게 하는 곳이었어요.

장갑을 끼고 보기만 하는 곳.

그리고 아이들을 들어 올려 보게 하면 사람들이 선택을 하는 겁니다.

어떤 아이는 보다가 제가 너무 무서워서 놀라기도 했어요.

그런데 

대박이는 다른 아이들이 다들 달려오고 사람들에게 봐달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오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저 혼자 멀찍이 떨어지는 아이였어요. 저는 그걸 보고 바로 저 아이다 생각했습니다.

데려다가 키우면 저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이미 독립적인 아이라 그것이 맘에 들어서 선택을 했습니다. 물론 오드아이라서 무섭지 않았고요. 두 눈이 파란 아이는 아무래도 무섭더라고요.


아이를 선택하고 차에 태우고 오는 내내 아들은 신이 났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저라도 신이 났죠. 

그렇게 오래오래 걸려서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실례를 하더군요.

온몸에 똥이 다 묻고... 다 씻어주고 거의 반 목욕을 하다시피 하고.

부랴 부랴 베란다에 겨울이라 추울까 봐 사람이 바닥에 까는 전기장판을 다 깔아주고, 이불로 꽁꽁 싸고.

신문지와 모포로 다 감싸주고.

첫날이라 그런지 아들은 잠도 못 자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설레었고요.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싶었어요.

모두들 작은 푸들이나, 손에 팍 안기는 포메라인을 추천했지만, 인생 살면서 제가 얼마나 개를 키운다고

개만큼은 제 마음대로 선택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아들이 허스키 아니면 안 된다고 했지만, 저도 은근 내심으로는 허스키 좋아하고 있던 거였어요.


무모하죠.


네 무모합니다. 제가 좀 그래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하지 않는 일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하고,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울 건지, 당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인생 한번 살면서 해 보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한 겁니다.

다른 건 못해도 적어도 개는 키울 수 있잖아요. 개가 아무리 커도, 내가 감당만 하면 되는 거니까.

적어도 저는 그런 사람인 듯싶습니다.


그런 아이를 디자인 사무실에 데려갔을 때.

난리가 났어요.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 직원이 많았던 당시에는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이뻐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들 대박~~ 하면서 탄성을 지르고.

그래서 나중에 이름도 고민하다가 그냥 대박이가 되어 버렸어요.


대박.


나중에 어딜 데려가도 사람들이 처음 보면 다 대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들 그렇게 대박이 이름들을 아는지.

제가 생각해도 작명에는 탁월한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대박이는 우리 가족의 일상으로 들어와서 서서히 스며들며 가족이 되어 갑니다.


정말 대박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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