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크리스마스이브
메리 크리스마스!
모든 이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지만, 정작 내게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있었던가 떠올려본다.
문득 오래전, 크리스마스이브가 생각난다.
스물한 살 생애 첫 미팅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청년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제발 저 남자만 아니었으면...'
순간 스친 생각이 하얀 눈에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 청년은 내 앞에 서 있었다.
엄격하신 아버지가 가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셨건만, 믿음직한 사촌 오빠가 소개해 준 마음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 청년을 보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한눈에 봐도 예민한 선생님 같은 인상,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다.
태어나 처음 미팅에 환상이 컸던 탓이었을까? 말수가 적고 내향적인 듯한 그 역시 어리숙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갈까?"
외모에서 풍겨지는 느낌과 다르게 부드럽고 고운 말투였다.
서로 거주하는 도시 중간 지점에서 만난 우리는 그 도시가 낯설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토스트를 먹고 동물원에 갔다. 긴장해서인지 동물들은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고 왔다는 사실만 간간이 내리는 눈발처럼 지워졌다 떠오르길 반복했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그는 "나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리지만 내가 가장이나 다름없어. 내가 결혼하고 싶다면 엄마는 찬성하실 거야" 그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체기가 있는 듯 가슴이 꽉 메여왔다.
" 태어나 첫 미팅에 결혼 이야기라니..."
그는 말없는 내가 조신해 보였는지, 좀 더 적극적인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어 넌?"
스물한 해 마음속에 그려왔던 첫 미팅이 와닿지 않던 나는 힘없이 대꾸했다.
"난.. 안 태어나고 싶어요!."
그러다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아버지 크리스마스 당직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불안해진 나는 양해를 구하고 도중에 나오고 말았다.
아쉬워하던 그가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지만, 내리면서 바로 녹아버리는 눈발처럼 흩어지고, 그는 서둘러 기차역으로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렇게 재미없는 미팅을 왜 그토록 말리셨을까' 소설에서는 그렇게 애틋하던 사랑의 환상이 부서진 허무함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행히 오후 6시 전
아버지 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때까지 가장 아끼는 딸이라는 이름아래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저녁 식사 시간, 무거운 정적을 깨고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아빠가 가지 마라고 했는데 갔단 말이지? 그게 첫선이나 다름없는데 보호자도 없이 너 혼자 갔어?"
'맙소사! '
나는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누가 미팅에 보호자를 대동한단 말인가?
평소에 열린 분이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딸에게만큼은 조선시대 유교사상을 그대로 적용시키셨다.
아버지의 낮게 깔린 음성 앞에서 그동안 착한 딸로만 살아왔던 내 자아는 독립을 부르짖으며 비명을 질렀다.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이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아버지가 오빠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날 내 종아리는 피멍이 들었다.
그동안 고분고분하던 딸의 독립선언은 아버지께 반항과 불안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종아리가 아픈 거보다 내 생애 첫 미팅이 이런 결말이 됐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단 한번 아버지의 뜻을 어긴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아름다운 인연을 만날지 모른다는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날 밤새워 울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에 열이 펄펄 끓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쇼크를 일으켜 호흡곤란이 오고 말았다.
목을 조여 오는 고통과 숨이 쉬어지지 않은 그 순간을 끝으로 내 기억은 끊겼다. 긴박한 상황에서 오빠의 빠른 대처로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나는 특이체질로 판명받았다. 그 약과 관련된 약들은 평생 복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후폭풍을 알 리 없는 그 청년은 계속 연락을 해도 닿지 않자 직접 찾아왔다. 호된 첫 미팅식을 치르고 , 나는 너무 지친 나머지 평생 남자는 쳐다보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청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설득했지만 결국 돌아갔다.
요란했던 크리스마스이브 나의 첫 미팅은 몸과 마음 모두 큰 상처를 남겼다.
처녀가 결혼 안 한다는 말은 삼대 거짓말이라더니, 몇 해가 지나 그 다짐은 결국 허물어졌지만,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여전히 그날이 떠오른다.
하얀 눈이 내린 기차역, 저 멀리서 손짓하며 달려오던 그 청년.
겉모습 보다 속이 꽉 찬 녀석이라고 소개한 사촌 오빠 말을, 나는 알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사촌 오빠와 통화하면서 30년도 지난 속내를 풀어내었다.
아픈 기억도 희미하게 희석시켜 주는
세월 덕분일까
지금은 그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아련한 미소가 번진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