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은 다시 피는데

그녀가 지켜낸 세월

by 김사임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 묽은 죽이 흘러들어 갔다.

평생 산과 들을 벗 삼아 일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좁은 병실은 감옥 같았을 것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불현듯 심근경색이 찾아왔고 이어 뇌경색까지 겹쳤다.


호스에 가파른 숨을 의지하던 그녀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주렁주렁 매달린 호스를 손으로 뽑아버렸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놀라서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그녀는 딸에게

"된장하고 배추 가져온나 어서 묵고 집에 갈란다."

그리고선 놀라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는 배추에 된장 쌈을 사각사각 달디달게 먹었다.


'배추쌈이 엄마의 마지막 식사가 되려나.' 그녀의 딸은 서늘하고 아득한 심정이 되었다.

놀라서 달려온 의사는 병원에서 더 이상 처치는 곤란하다며 퇴원을 권유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동안 병 때문에 못 마신 물이나 마음껏 마시고 떠나라며 두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겐 매시간 헐떡이는 숨에 옷섶이 파르르 떨리는 불안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고단한 삶 위로 봄은 하얀 찔레꽃을 천지에 피워냈다.

매일 촌각을 다투는 시간 속에 그녀 남편의 자전거 페달은 다급했다. 횡단보도에서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조급한 그의 등 뒤를 쫓았다.


하지만 바람은 서두르지 않고 먹구름을 서서히 걷어냈다. 맑간 햇살이 어루만진 듯 그녀의 숨결은 한결 잦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얀 찔레꽃이 피는 열 번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이 따라붙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딸이 넌지시 물었다.
"엄마, 그 힘들고 아픈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어?
살아온 날이 억울해서 갈 수가 없었어?"

그녀는 그런 딸에게 하얗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느그 아버지 나 없으면 밥 안 드신다."

놀랍게도 그녀는 사경을 헤매는 중에도 마음으로 남편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무던히도 속을 썩이던 그녀의 남편,

그 세월이 채워주지 못한 목마름이었을까, 그녀의 눈빛은 가질 수 없는 신기루를 좇듯, 늘 남편 주변을 맴돌았다.

병간호를 자처하는 자식들에게 그녀의 남편은 말했다.


"내 사람이니 내가 간호하는 게 맞다. "

하지만, 불사조처럼 영원히 남편 곁을 지킬 것 같던 그녀는, 남편이 곤히 잠든 새벽 홀연히 먼 길을 떠났다.


그녀가 그리도 좋아하던
하얀 찔레꽃이

눈처럼 흩어지던 그해 봄


남편 걱정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어찌 떼어 놓았을까.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창백한 봄날

그녀가 떠나간 빈자리에
하얀 찔레꽃 향기는

그대로인데...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