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위잉
위잉잉...
위이이잉......
차는 연신 헛바퀴만 돌고 있었다.
평소라면 단번에 오르던 언덕길이었다.
하지만 폭설이 내린 다음날, 도로는 반들반들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들은 아침부터 반찬 타령을 했다.
"에이, 무슨 반찬이 김치밖에 없어"
그즈음에는 눈길 운전을 삼가하고 있었다.
눈길 운전하다가 큰 사거리에서 차가 한 바퀴 맥없이 돌아버린 날 이후로,
그런데 하필 폭설 예보를 듣지 못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에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
문제는 그 언덕이었다.
경사로에서 차가 오르지 못했다.
조금만 힘을 내면 될 것 같았다.
전진
위이잉...
후진
다시 전진
윙.. 윙...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기어변속을 했다.
다른 길로 갈까?
생각도 잠시, 다른 길은 너무 멀었다.
후진하고
다시 전진
몇 번을 반복해서 기어변속을 했는지
기억도 못할 즈음
차가 간신히 언덕을 올라 챘다.
와, 안도의 숨을 쉬던 그 순간
바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차는 마치 미친 말처럼 내리막을 달렸다.
바로 앞에는 눈길 위를 엉금엉금 걷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급박한 순간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주머니를 피하려고 순간적으로 핸들을 좌측으로 꺾었다.
그곳은 병원 입구였다.
병원 입구에는 주차 공간이 따로 없었다.
차들이 양쪽으로 들쭉날쭉 주차되어 있었다.
빙판 위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다닐 공간 그 좁은 통로를 브레이크가 고장난 내 차는 전속력으로 달려 들어갔다. 무아지경이 따로 없었다. 들쭉날쭉 주차된 차들의 꽁무니 사이를 열대여섯 대쯤 지나쳤다. 기적처럼 단 한 대도 들이받지 않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차는 속도가 줄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 병원 건물의 막다른 벽이 나타났다. 이제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직 앞으로 직진만 가능했다.
차는 마치 벽을 뚫을 기세로 달렸다.
아. 어떡해!!!
공포에 질려 동공이 흔들리던 그 순간
스윽 ...
스윽...
스으윽......
차가 멈췄다.
그곳은 아무도 출입을 하지 않은 병원 구석진 자리였다.
수십 센티 쌓인 눈더미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매미의 빈 껍질처럼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고기반찬이고 뭐고 며칠을 앓아누웠다.
내 말을 들은 정비소 아저씨가
"아이고... 하마터면 황천길 가실 뻔했구먼요."
나는 차만 끌고 다녔지 차를 다룰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 병원 앞을 지나간다.
여전히 차들은 들쭉날쭉 주차되어 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빠져나올 공간
그 좁은 길을 빙판 길에 전속력으로 통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헛웃음이 나온다.
만약에 주차된 차들 뒷 꽁무니를 다 들이받고 지나갔다면, 그 사고 처리를 어찌 감당했을까 아찔하다.
차가 벽에 충돌했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이다.
그날은
운이 나쁜 날이었을까
무사했으니
운이 좋은 날이었을까
아니면
빙판길 차량 사이를 전속력으로 달리던 나는
나홀로 스턴트우먼이었을까.
가끔 그날 일을 떠올리며 웃는다.
우린 살아가다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과 마주친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