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화투

그리운 명절의 추억

by 김사임


"자, 새마을 화투 한 판 치자!"


아버지의 활기찬 목소리에 2남 4녀 우리 형제들은 눈을 반짝이며 화투 담요 앞에 모였다.


명절놀이로 윷놀이를 하는 집도 있지만, 우리 집 명절놀이는 늘 화투였다.


그 당시는 고스톱은 전혀 몰랐고 그저 민화투를 쳤다. 화투를 칠 때면 우리가 앉은자리 주변에 과일과 떡. 식혜 같은 간식이 푸짐하게 대기 중이었다.

사람의 성격을 알려면 화투를 쳐보라는(?) 말이 있다. 뭔가 그 말에 일리가 있는 듯하다.


먼저 바닥에 화투 패를 뒤집어 순서를 정한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화투는 명절의 즐거움과 가족 간의 화목"이 목적이라고.

설날이 되면 복돈을 밑천으로 우리의 명절놀이는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우리와 몇 판을 치시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슬쩍 빠지셨다.


하지만 처음엔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화투놀이가 열이 오르면서 점점 흥분하기 시작한다. 화투 치는 사이사이 농담도 오가지만, 역시 자기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오빠, 예수 치기 했지?"


언니가 눈을 부라렸다.


"뭔 소리냐,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니, 이럴 수가 없어 내가 이십끗짜리 두장이나 갖고 있었는디..."

언니는 화투 담요를 뒤집었다.

화투 한판이 끝나면 진사람이 이긴 선수에게 돈을 건넨다.
언니는 늘 순순히 주지 않았다. 돈을 던지듯이 주거나, 토를 달거나 아예 담요를 뒤집었다.

그때 화나서 씩씩대던 언니 표정과
억울해서 인상을 찌푸리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이긴 건 받고, 지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막내는 돈을 건네면서 코가 빨개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눈물이가 나요"


"코가 빨개져요"


우리는 막내에게 위로의 배 한쪽을 건네며 한바탕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보시던 아버지는 한 가지 묘책을 내셨다.


일명 "새마을 화투"
돈이 오가는 대신
성냥개비로 셈을 바꾼 것이다.


당시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모두에게 이롭게 잘 살아보자" 그런 의미였던 거 같다.

화투치고 이긴 만큼 성냥개비가 모였다.


그 덕분에 화투 치는 분위기가 한층 재밌었지만, 누군가 잃고 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쉽기도 했다.


마지막에 성냥개비를 가장 많이 모은 자식에게는 아버지가 용돈으로 보상해 주셨다.


화투를 치는 사람과 구경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 그 사이에 시원한 배와 식혜. 명절 음식을 먹는 재미가 어우러졌다.


민화투에서 가장 좋은 패는 단연 이십 끗 , 둥근 보름달과 벚꽃. 황새 같은 패였다. 그런 패가 한 장만 들어와도 흥분해서 서로 친다고 괜히 열을 올리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명절 때마다 새마을 화투를 쳤다.
그런데 신기한 건 형제들 누구도 도박으로 이어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결혼 후 나도 우리 아이들과 명절 때마다 고스톱을 친다. 물론 그 옆에는 과일과 떡 간식이 대기 중이다. 평소보다 약간 들뜨고 오버하며 농담이 오가는 시간,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간혹 누군가 계속 이기면 " 아따, 거기가 명당이구만!" 하며 그 자리를 탐내기도 한다.


몇 시간 열중하다 보면 다리도 저리고 셈도 오가지만, 마지막에 보면 실력은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가장 많이 딴 사람이 맛있는 한 턱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역시 우리 아이들도 도박에는 관심은 없다.


명절에만 생각나는 화투놀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명절의 즐거움과 가족 간의 화목이 잘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곧 구정이 다가온다.

예전에 가족들과 즐거웠던 명절이 문득 그립다.


구순이 넘으신 아버지는 지금은 화투에 흥미가 없으실 것 같다.

그 시절엔 아버지가 화투 놀이를 즐기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우리에게 명절의 즐거움을 알려주시려 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요즘 실제 체감 경기가 얼어붙어 마음이 편치 않은 느낌이 전해진다.


그럴수록 명절에 사소한 놀이라도 즐기면서 가족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좋은 시절을 기다리기보다 즐거운 순간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얼마 전 의류를 구입했더니 사은품이 따라왔다.

뭔가 열어보니 놀랍게도 "화투"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번 구정에도 가족끼리 재밌는 화투 한 판을 칠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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