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가 거기서 왜 나와?
이전 아파트에 살 때 나는 11층에 살았다.
거실 앞으로 산이 펼쳐진,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겨울에는 자고 일어나면 눈앞에 펼쳐진 설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산을 마주하고 있으니 공기도 좋고, 가볍게 산책 삼아 오르내리기에도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옥에 티는 있는 법이다.
그 아파트에는 8층에 거주하시는 50대 후반쯤 보이는 독특한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보통 엘리베이터를 타면 사람들은 입구 쪽을 응시하고 서있게 된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측면에 등을 기대고 서서
사람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면서 친절을 가장한 느끼한 미소를 날린다.
(본인은 사람 좋은 웃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매는 게슴츠레하게
그리고는 꼭 말을 건넨다.
"아유, 애들이 많이 자랐던데요?"
(동굴 보이스)
"아, 네..."
마지못해 대꾸하면
"그런데 어찌 그리 변함없으세요?"
"참. 언제나 여전하시네요."
이런 말들을 건네면서 빤히 정말 빤~히 쳐다본다.
그 당시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공간이 좁아서 마주 보고 서면 유난히 민망한 거리였다.
처음 한두 번이야 이웃이니까 그러려니
어색하게 웃으며 지나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알 수 없는 친절과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는 더 그랬다.
가족들에게 얘기했더니 딸내미가
"그 아저씨 원래 그래, 근데 착해 "
원래 그렇다는 걸 보면 나에게만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늘 웃는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끔 길에서 전도한다면서 과도한 친절로 접근한 사람들은 왠지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고 그 아저씨가 내게 전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1층에서 8층까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순간, 그 알 수 없는 미소와 친절은 왠지 그런 느낌이 들게 하였다.
맘 같아서는
"제발 사람 빤히 보면서 느끼하게
웃지 좀 마요!."
이러고 싶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사람을 한 번만 봐도 기억하고,
살짝 스쳐도 금세 알아본다.
외출했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무심코 뒤돌아봤는데
아뿔싸!!
그 아저씨가 뒤따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냅다 뛰었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계속 오르막 길인데, 평소 같으면 천천히 오를 길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저 아저씨랑 엘리베이터 안 타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마치 에로 영화를 찍은 사람처럼
"에헥, 에헥..."
너무 숨이 차서 허리를 펼 수 없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저걸 놓치면 저 아저씨랑 타게 된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제발.. 제발...'
그때 운 좋게도 닫히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안에서 누군가 열림 버튼을 눌러 준 것 같았다.
'아, 이제 살았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숨을 헐떡이며
"가, 감사합니다... 헥헥... "
간신히 허리를 펴던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 그 아저씨가 엘리베이터 안에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특유의 그 느끼한 미소를 장착하고...
아, 정말 아득한 심정이었다.
'분명 내 뒤에 오고 있던 아저씨가 어떻게 된 일이지?'
같이 타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엘베를 붙잡았는데, 결국 그 아저씨와 타려고 그랬다는 것 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헤매는 내 심정을
알리 없는 아저씨가 물었다.
"ㅎㅎ운동하셨나 봐요 ~
땀을 흠뻑 흘리셨네... "
멍한 내 표정은 안중에 없이
뭐라 뭐라 하는데
이미 나에게는 해석불가였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축지법을 쓰셨나?'
그렇다고
"아저씨 피해서 달려왔는데
왜 여기 계세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아저씨는 평소처럼 느끼한 멘트를 날리고, 나는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는 의문의 물음표만 수만 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찌 된 일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 아파트는 정문에서 곧장 오는 길과
산길을 따라 등산로를 따라 후문으로 들어오는
두갈레 길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파트 입구에서 아저씨가 등산로를
타고 왔나?
몸집도 크고 걸음도 느린 아저씨가?
왜?
어떻게?
엘리베이터 안에 나보다 먼저 탈 수 있었던 거지?
아직도 나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그날의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후 이사를 오면서 그 불편함은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동네 주변에서 우연히 그 아저씨를 봤다.
트럭 옆에서 쪽파를 고르고 있었는데, 많이 수척해진 모습에 안쓰러운 느낌도 잠시,
흠칫 놀라며 어딘가로 피하려는 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친절은 좋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과도한 친절은 나는 사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