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무늬 숟가락

어느 순간 엄마를 닮아가는 딸

by 김사임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ㅋㅋ 맛있냐? 마이 묵어라."

언니는 뭐가 그리 웃긴지
밥 한 숟가락 먹고
나 한 번 보고 킥킥댄다.

"뭐가 웃겨?
말해봐라, 언니야 응?"

내가 여러 번 찔벅거리자
언니는 그제야 귓속말로 말했다.

"그 숟가락, 낮에
엿장수 아저씨가 빨았어. 킥킥킥."

언니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하얀 밥알이 언니 혓바닥에서 덩달아 웃는다.

"잉? 뭐라고~??"
그 순간 밥맛이 천리만리 도망가 버렸다.

"진짜야?" 내가 재차 묻자,

"진짜다. 내 똑똑이 봤어.
국화무늬 숟가락.
낮에 엄마가 엿장수 아저씨 밥 차려주더라~"

언니가
내 말을 못 믿겠냐는 듯
눈을 흘긴다.

동생들도 덩달아
"맞아 맞아.
나도 봤어!"

낮에 마실 싸 댕기느라
나만 몰랐던 사실이었다.

비위가 상해
밥상에 숟가락을
"탁!" 내려놓은 순간,
숭늉 양푼을 들고 들어오시던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뭐여? 뭣한디
숟가락은 패대기치고 지랄이여!"

언니와 동생들은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척 밥만 먹었다.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에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이 숟가락 엿장수 아저씨가 밥 먹었다며..."

"그래, 낮에 아저씨가 된장국에
열무에 밥 좀 드셨어.
그게 뭐 잘못됐냐?"
엄마가 눈을 흘기신다.

"아니 근데 그 숟가락을
왜 나한테 주냐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와 동생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죽여 킥킥킥 웃었다.

빤히 알면서
'국화무늬 숟가락'을
나한테 미루고 신나 하는 게
더 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엿장수 아저씨와
내가 같은 숟가락을 빨았다니...
그 생각만으로
그렇게 달던 밥맛이 구역질이 날 듯
신물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열 살 무렵
어린 내 마음으론
엄마가
"그랴, 미안혀!"
다른 수저로 바꿔줘도
모르는 척 넘어갈까 말까인데…
다른 수저는커녕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다.

"못된 가시나…
니 입만 입이냐?
엿장사 아저씨가 뭣이 더럽다고
호강에 겨웠구먼
그럴 거면 밥 묵지 마!!"

그날 저녁
밥은 두세 숟가락,
'국화무늬 숟가락'으로 먹은 게 다였다.

캄캄한 감나무 밑에서
훌쩍훌쩍 울먹이며


'엄마는 나보다 엿장수 아저씨가
더 좋은가?'


백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랬다.
엄마는 우체부 아저씨나
엿장수 아저씨,
동네 할머니가 오시면
꼭 뭔가를 대접하셨다.

삶의 애환을 모르고
깨끗하고 예쁜 사람만 좋아 보이던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엄마의 평소 지론은
"돈 없는 사람하고는 살아도
인정 없는 사람하고는 못 산다!"였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철딱서니 없던 우리는
'국화무늬 숟가락'으로 안 먹으려고
서로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닳고 닳아 납작해진
수저 한가운데
국화무늬가 선명하던
국화무늬 숟가락…

그날 늦은 밤
엄마는 말없이 찐 감자 양푼을
슬며시 밀어주셨다.

야단은 쳤지만
밥 못 먹은 딸이
마음에 걸리셨던 게다.

밥보다 중한 게 없던 시절
밥을 거른 자식을 보던 엄마의
안쓰러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나도 그 시절
엄마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수저통을 정리하다가 문득
'국화무늬 숟가락' 그날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는다.

살다 보면, 그땐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순간 와닿을 때가 있다.

나이 들어가며 은연중에
엄마를 닮아가는 나를 본다.

살다가 문득문득
엄마 생각에
목이 메이는 그런 날...


그날이
오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