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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잉하리 Jun 25. 2020

조금만 아프고 금방 잊고
건강하길 바란다.

 유난히도 아이들과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이 많이 들린 요즘이다. 9살 아이가 가방에 갇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계부와 친모의 폭행을 피해 9살 아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지면을 채웠다. 화가 난 계부가 아이를 안고 분신을 시도했다가 다행히도 아기의 목숨을 건졌다는 엽기적인 뉴스는, 보호자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새 학년이 되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 망할 코로나로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아이들 중에 유난히도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 등교 개학 전 아이 아빠와 전화로 상담했을 때, 아이는 엄마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며 아빠 혼자 아들 둘을 키운다고 했다. 단 한 번의 전화 통화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이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학교에서 그리도 강조하고 있는 가족의 다양성 아니던가!


직접 대면한 아이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코로나로 길어진 방학 동안, 긴급돌봄이란 이름으로 계속 등교를 했던 아이는 학교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아이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무기력은 안타까움을 넘어선 놀라움이었다. 고작 2학년인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다 선생님이 깨워서야 겨우 게슴츠레 눈을 뜬다는 사실을 어떤 누가 믿을 수가 있을까? 나도 보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작년엔 깨나 명랑하고 애교 있던 아이라는 전 담임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니, 속에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아이답게 꾸미지도 않고 더하거나 빼지도 않는다. 아이는 집에서는 자주 혼나는 것 같다. 아이는 형이 있고 걸핏하면 싸운다. 아빠는 집에서 자주 맥주를 마신다. 가끔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종종 아이를 타박하고 때로 등도 찰싹찰싹 때린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있는 것보다는 아빠와 있는 것이 훨씬 좋다. 아직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 아빠의 처지와 입장을 내 시선으로 헤아려 본다. 아빠의 삶도 어지간히 고단할지도 모른다. 피곤한 하루 집에 돌아와 온전히 아이를 혼자 돌보다 보면,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다정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사치일 수도  있다. 굶기지 않고 잘 씻겨 다음날 학교에 보내는 게 아버지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긴급돌봄교실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무얼 공부했는지, 몇 명의 친구들이 등교를 했는지 따위의 먹고사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묻고 들어줄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국어시간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가족이나 친구에게 편지 쓰기를 했다. 그 아이는 쓸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가족에게 전혀 고마운 게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아이만 붙잡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돌봄교실 가기 전 둘만 교실에 남았을 때, 은근슬쩍 이야기를 했다. 


"네가 입은 그 깨끗한 옷은 저절로 세탁기로 들어갔나?"

" 오늘 메고 온 가방 멋있다. 그건 누가 사준 거야?"

"어제 저녁에 누가 밥 차리고 설거지는 누가 했어?"

아이는 대답한다. "그건 다른 엄마들도 다 해주는데요. 당연한 건데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내 심신을 달래 가며 겨우 해내는 그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니, 순간 상대가 아이라는 것도 잊고 버럭 화 비슷하게 반응을 했다. 

"그게 뭐가 당연해? 어? 선생님이 일 끝나고 가서 밥하고 설거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게 뭐가 당연하다는 거야?"


"그럼 그냥 거짓말로 그냥 쓸까요?"

 아이의 질문에 아차 싶다. 아직 낯선 새 학년 선생님이 언성을 높이니 짐짓 놀랐나 보다. 평소 진심이 담긴 글이 가장 좋다고 강조하는 터라 그래라 등 떠밀 수 없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가족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고 했는데도 어떤 고마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고작 8년남짓 산 아이에게 세상은 지루하고 재미없을뿐더러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위기철 아홉 살 인생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다.' 맞다. 아름다운 봄꽃이 한철인 것처럼,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찬 순간도 있지만 괴로운 날들도 있고, 별 일 없는 그저 그런 날도 있다. 그건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설렘에 잠이 늦게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눈물을 쏙 빼고 이불에 코를 묻히며 잠드는 날도 있다. 세상엔 조심해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고, 남과 나누어야 하며 기다리고 참아야 한다. 학교를 갈 즈음부터는 싫어도 때로 책상 앞으로 끌려와 앉기도 해야 하니, 어린이들 인생도 참 녹녹지 않다.


하지만 보통의 어린이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할 고마운 마음 한두 가지는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세상 사는 일이 핑크 빛으로 가득 찬, 매일 즐거움의 연속은 아닐지라도 함께 했던 즐거운 순간들은 떠오르기 마련이다. 고마운 사람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 아이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식당이 있냐고 물으니, 좋아하는 식당은 없고 육개장 사발면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래! 뭐 어떠냐 우리 사발면을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 편지를 쓰자. 2학년 아이가 쓴 감사편지의 주인공은 생뚱맞게도 농심 사장님이 되었다.



 어렵사리 두세 줄 써낸 편지를 확인하고 다른 아이들의 학습지와 묶어 놓다가 우연히 아이의 학습지 뒷면을 보고 잠시 멎어버렸다. '네 마음은 여기 있었구나? 친구들이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척척 써내려 갈 때, 네 마음은 이렇게 엉켜 복잡했구나.' 실타래처럼 엉커 버린 아이의 마음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아니, 내가 무슨 수로 그 아이의 마음을 다독인단 말인가? 가끔씩 마음을 들여다보고 두드려 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없는 것 같다. 난 또 이런 문제 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어.  


 학교에 손 쓸 수 없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한 학년에 한 둘씩은 교사의 역량으로 품어 안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이제 부모들도 통제할 수 없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모두 어른의 책임인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미워진다. 새 학년 반 배정을 할 때, 학교에 핵폭탄급 유명인사가 있으면 그 학년은 기피 학년이 되어버린다. 제발 내 반은 안되었으면 하는 게 거의 모든 교사들의 마음이다.


 마음이 병들어 아픈 아픈 아이들이 많다. 다친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도 다양해서, 어떤 아이는 폭력적이고 어떤 아이는 무기력하며 어떤 아이는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하나 같이 세상에서 상처  받아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같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한 아이 9살 아이는 치료를 받으며 잘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 아이가 맡본 지옥을 다 잊고 건강히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을 향해, 어른들을 향해 다시 돌려주고 싶어 지지 않을까? 다 잊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그 아이도, 아픈 다른 아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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