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인트 Mar 15. 2020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그 시절 가사의 경향 (인트로)

초창기 한국 힙합은 무엇을 노래했는가?

   한국 힙합 음악의 역사를 언제부터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김진표의 1집 앨범 [열외(列外)](1997)가 대한민국 최초의 랩 앨범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앨범 제목이 참 멋지고, 김진표답죠). 그전부터 힙합 내지는 흑인 음악을 표방한 음악은 있었고 랩이 들어간 트랙들도 있었지만, 이 앨범이 ‘최초의 랩 앨범’이라는 칭호를 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전곡이 랩 위주의 트랙으로 되어있으며, 랩 가사의 형식(라임)을 바르게 갖췄으며, 가사가 한국말로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최초인 만큼 이 앨범의 라임은 지금 시대에 비하면 너무나 뒤떨어지는 1차원적인 라임이지만, 그는 적어도 라임을 ‘있으면 좋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요소’로 받아들인 랩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이후로도 한국말 랩이 최소 4년, 길게 잡으면 7년가량을 라임의 유무를 갖고 논쟁했던 걸 상기해보면 꽤 좋은 출발이었던 셈입니다.


   1997년 김진표의 스타트 이후 한국말 랩이 발전을 지속하면서 시기에 따라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이 변해왔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저마다의 시대정신을 가졌던 것이죠. 한국에서 힙합이란 게 신기한 것으로 치부되던 초창기 시절, 랩이란 것은 기존의 틀을 깨는 음악이자 표현방식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 당시 힙합을 대변하던 단어는 지금 돌아보면 유치하게 그지없는 ‘자유’였습니다. 비록 언젠가 버벌진트가 “누가 제일 처음 그 얘길 입에 담았는지 몰라도 한참 잘못 이해되고 있음이 틀림이 없네”(from ‘A Milli Freestyle’)라고 지적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뜻은 사라지고 “힙합은 자유”라는 이용하기 좋은 구호만 남아 오히려 힙합을 호도하는 도구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지만, “힙합은 자유가 아닙니다. 단 힙합은 자유를 노래했죠.”라는 리드머 편집장 강일권 님의 말처럼 억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나아가 사회 비판과 의식 있는 가사를 통해 자유를 외치는 것이 초창기 한국 힙합의 이미지였습니다.


   이처럼 랩 가사는 넓게는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며, 좁게는 당대의 힙합 씬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초창기 한국 힙합의 가사를 아무런 지식 없이 들어보면 지금은 이해할 수 없거나,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그 맥락이 피부까지 와닿기는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이 <힙합, 그 시절 가사의 경향> 시리즈는 초창기 힙합에서 쓰였던 가사의 소재와 전개, 당시 힙합 씬의 에피소드 및 뮤지션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 가사들이 당시에는 어떤 맥락 안에서 쓰여졌고 소비되었는지를 돌아볼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보석 같은 명곡들의 추억을 되살리고, 운이 나빠 잊혀진 ‘불우의 명곡’들도 조명하는 유익이 뒤따르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이 글쓰기는 저의 불완전한 기억들, 보유하고 있는 CD장,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필드에서 뛰었던 플레이어가 아닌 일개 방구석 팬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한계가 있음을 미리 인정합니다. 순도 높은 비평 작업을 펼치거나 역사서를 집필하는 작업이 아니므로 미처 떠올리지 못한 명곡이나 간과한 뮤지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빠트린 부분은 읽는 분들이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현재 힙합 씬에서 앞으로의 글에서 언급한 곡들과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갖는 곡들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참에 ‘초창기 힙합’의 범주를 정의하는게 좋겠습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2010년대로는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