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책 〉
《 이주하는 인류 》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_샘 밀러 / 미래의창
나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지옥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서울 지하철 안에서 특히 여성들과 몸이 부딪히지 않으려고,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손을 최대한 위로 올리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고향 앞으로 가!”하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몇 퍼센트나 남아있게 될지 궁금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부모님 고향을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님 고향은 충남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서울로 이주한 가정에 태어난 서울 촌놈일 따름이다.
‘원주민’이라는 단어와 ‘이주민’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주민들은 텃세가 세다. 귀농 또는 도시생활자가 시골생활로 전향했을 때, 많이 듣는 말이 ‘원주민’들의 텃세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하물며 고향을 내려갔는데도 타지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도시생활자는 먼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물론 원주민이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주민과 이주민사이의 벽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 원주민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봤을 때도 여전히 영락없는 원주민일까?
이 책의 지은이 샘 밀러는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했다. BBC의 뉴델리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 여러 이유로 출생지인 영국을 떠나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고향이라 부를 곳이 없는 상태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주하는 종이며, 지상에 사는 그 어떤 포유류보다 더 강한 이주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주하는 이들의 과정이나 사연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차이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류의 이주는 태초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오며 인류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류의 이주사를 통해보는 인류사」이다.
“나는 이주 혹은 이민이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파고드는 모든 문제들(정체성, 민족성, 종교, 애국심, 향수, 통합, 다문화주의, 안전, 테러, 인종차별주의 등)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민 또는 이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주민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는 모두 이주민의 후예다.”
지은이는 인류 이주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수억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하기 전 약 5억 3천만 년 전 바다에 살던 가재지네가 육지에 올라온 흔적(화석)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그리고 수많은 인류의 이동 나아가서는 현재 지구상의 이슈이기도 한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의 문제까지 접근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이주학’까지 접근했지만, 이주민들을 현대 세계에서는 비정상적인 ‘특별한 경우’로 정형화시키는 점에 크게 실망한다. 다시 원주민, 이주민이야기로 되돌아가볼 때 누구나 지구상에 100프로 순수한 원주민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이주민들을 대할 때 좀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아마도 후대에서 이 책의 속편을 쓴다면, 지구별에서 다른 별로 이동한 인류이주의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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