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_한병철 / 김영사
고통을 못 느끼는 희귀병(실제로 그런 병이 있다)에 걸리지 않는 한 인간은 고통과 함께 살아간다. 편의상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의미 없는 일이다. 어차피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시대의 증언자인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묻고 있다. “어떻게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비교해 판단할 수 있는가?”(『고통에 반대하며』1985)
“예리한 산문으로 현대인의 몸에 사유의 칼날을 찔러 넣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고통’을 향한 사유를 따라 가본다. 책 제목은 『고통 없는 사회』이지만, 고통 없다는 의미가 painless 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배격하는 사회를 고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저자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고통’의 얼굴을 새롭게 그린다.
“고통은 복합적이고 문화적인 형성물이다. 사회 안에서 고통이 지니는 현재성과 의미는 지배형태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무슨 말인가? 고문이 자행되던 전근대사회에선 고통을 통치수단으로 삼았단 이야기다. 권력공간들은 고통의 비명으로 채워져 있다. 고문사회가 종식된 것이 아니지만, 고문사회가 규율사회로 넘어가면서 고통에 대한 관계도 바뀌게 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사회가 고통을 더 은밀한 방식으로 투입한다고 지적한다. 고통은 규율의 계산에 따라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됐던 고통이 규율사회에 들어서면서 다른 구성적 역할을 하게 된다. “고통은 이제 공개적으로 전시되는 대신 감옥과 병영, 기관, 공장 혹은 학교와 같은 폐쇄된 규율 공간으로 옮겨진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폭력의 양상이 수감자, 군대,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고통의 흔적이 남긴다. 고통은 탈 정치화되는 대신에 의학적 문제로만 남게 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행복하라’는 새로운 지배공식이다. ‘행복고문’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될 듯하다. 행복의 긍정성이 고통의 부정성을 밀어낸다. 이쯤 되면 개인의 고통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지배층이나 사회는 아무러한 책임이 없다. 단지 개인의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림이 그려진다. 권력은 예전보다 훨씬 스마트한 방법으로 타자를 조정한다. 직접적인 고통을 주지 않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권력은 고통과 완전히 분리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고통공포를 시작으로 고통의 무의미함, 진실로서의 고통, 고통의 시학, 고통의 변증법, 고통의 존재론, 고통의 윤리학 등을 이야기한다. 각 챕터의 글들이 그리 긴 내용이 아니다. 함축적이고 핵심적인 단어를 통해 절제된 표현을 하고 있다. ‘고통’을 다각적으로 해석하고 사유해보는 시간이 된다.
저자는 책의 끝을 “마지막 인간”으로 맺고 있다. “마지막 인간(또는 최후의 인간)”은 프랜시스 후쿠야마(미래 정치학자)의 책 《역사의 종말》마지막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우월욕망을 삶에서 내쫓고 이를 합리적소비로 대체할수록 우리는 ‘마지막 인간’이 되어간다.”고 기술했지만, 한병철 교수는 후쿠야마의 주장과 달리 마지막 인간의 출현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반드시 결부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마지막 인간은 현대의 고유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인간은 자유주의적 체제를 선호하지 않고, 전체주의적 정권과도 어울릴 수 있다는 논조는 선뜻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를 숙고(熟考)의 과제로 남겨둔다.
“행복이 영구히 지속되는 고통 없는 삶은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삶의 부정성을 억압하고 내쫓는 삶은 스스로를 제거한다. 죽음과 고통은 서로 뗄 수 없다. 고통 속에서 죽음이 선취된다.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자는 죽음 또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좀비의 삶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철폐한다. 인간은 불멸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삶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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