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_토르비에른 에켈룬 / 싱긋
인간의 ‘걷기’ 행위는 다소 단순해 보일지라도,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역동적이다. 걷는 중 거의 모든 근육과 관절이 움직인다. 특히 관절 주변의 인대나 힘줄도 매우 섬세한 움직임으로 걷는 것을 도와준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걷는가를 관찰하면서 근골격계의 이상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걷는 행위는 일부러 시간을 내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러닝머신이 만들어지고, 워킹도로가 설치되고, 워킹관련 소품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이젠 일부러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모두 걸어서 갔다. 길은 이렇게 내 삶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땅이 젖지 않은 널찍한 길은 빨리 걸어갔다. 가파르고 젖은 길은 걷는 속도가 느렸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공간은 내게 또다시 여행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노르웨이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이 책의 저자 토르비에른 에켈룬은 어느 날 한 저자와 인터뷰 중 한 순간에 의식을 잃게 된다.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의식이 돌아왔다. 특히 두뇌를 중심으로 온갖 검사를 다했다. 다행히 며칠 만에 언어능력과 기억력이 회복되었다. 의사는 저자에게 ‘뇌전증’ 진단을 내린다. “이제 당신의 삶은 많은 것이 바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더 이상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뇌전증’은 일반적으로 ‘간질’이라고 부르던 증상을 의미한다.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심하기 때문에, ‘뇌전증’으로 용어가 바뀌었다. 의사가 운전을 금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운전 중 발작 증상이 일어나면,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매우 심각하고 위중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어쨌든 저자는 그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뚜벅이가 되면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리적, 신체적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걷는 방법을 새롭게 시도해보기도 했다. 빨리 걸어보기도 하고 느리게 걸어보기도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도 하고 빈 배낭을 메고 걷기도 했다. 무거운 등산화를 신기도 하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맨발로 걷기도 했다.
저자는 걷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일상과 생각을 기록했다. 그리고 걷기와 이동에 대한 관심을 태초의 인간과 생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기도 한다. “우리는 한때 방랑하는 유목민이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지금은 어떤가? 거의 한곳에 머물러 산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대부분 ‘탈것’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자동차가 신발처럼 되었다. 그러나 내 경험적으로도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 걸어 다닐 때, 같은 길이라도 사뭇 다르다. 차를 이용해서 다니던 길도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는 노면의 상태를 더욱 민감하게 느낀다. 하물며 걸어 다닐 때는 두말할 필요 없다.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저자가 ‘길’과 ‘도로’에 대해 기록한 글에도 공감한다. 예전에 길은 자연풍광과 서로 잘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심지어는 생명력을 끊어놓기도 했다. 땅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철새들의 이동통로도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금속 비행체가 차지했다. 물고기들의 이동통로도 댐과 다리들 때문에 끊겼다. 도로가 길을 묻어버리고 끊어버렸다.
“우리는 길을 어딘가로,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경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뒤쪽, 우리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보편적인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우리를 만든 자연환경과 사람들, 우리 조상들을 지나쳐 걷는 것이며, 노동과 여가, 호기심, 일상에서의 탈출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P.S ; 저자를 걷기 마니아로 만든 뇌전증 증상(발작)이 그 후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긴 못 들었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빼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증상에 대해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를 받았겠지만, 들로, 숲으로, 산으로 걷는 것이 일상화된 저자의 ‘걷기’중 특히 ‘맨발 워킹’이 뇌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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