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흑백에서 균형의 미학까지 -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단상

by 범준

'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0년 개봉한 국내 영화 『남산의 부장들』입니다.




세련된 흑백


전작...아니, 전전작 <내부자들>의 경우는 영화찍어보자는 극 중 대사처럼 진짜 영화처럼 끝을 낸데서 오는 아쉬움이 컸다. 캐릭터들이 춤추는 판도 훨씬 맛깔났고,(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생생한 느낌이 났다. 즉, 소위 '영화적 재미'는 더 나았다.



극중 곽상천이 '각하는 흑백이 더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한 대사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이 영화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라고 본다. 그 전에 박통은 '국민들이 나를 컬러로 봤으면 좋겠나? 나는 흑백이 좋은데.'라고 한다.



영화는 미장센을 아주 훌륭하고 세련되게 꾸미며 인상깊은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지만,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건조한 서사를 깔고간다. <내부자들>이 컬러화면이라면, <남산의 부장들>은 흑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깔끔하고 세련된 흑백.



왕정시대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들의 기우와 달리, 이 영화는 특정 이념을 지지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감독의 의도도 그렇고, 원작소설도 그렇다. 컬러를 덧입힐 수 있었겠으나 감독은 그걸 잘 내려놓았고, 그 지점이 바로 <내부자들>이 남긴 찝찝함을 극복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전달되는 힘, 연기



원작자인 김충식 교수님이 이 영화를 보곤 이성민의 박통 연기가 인상깊었다고 했다. 귀 분장만 했는데도 진짜 박통이 있었다는 평을 덧붙이며. 배우 이병헌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괜히 자존심이 상했(?)는데, 영화를 보니 왜 그러는지 납득이 되더라. <내부자들>의 인물들은 '참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라면, <남산의 부장들>은 '참 잘 살렸다'는 느낌. 마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보는듯했다. IPTV로 보는데도 박통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씬의 몰입감이 엄청났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때로 어떤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란 영화의 구성요소 그 이상의 의미를 빚는 때가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바로 그런 영화다.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이후, <기생충>의 흑백버전 개봉이 예고됐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잘 먹히는 이유가 <남산의 부장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jpg?type=w773 썸네일 장면과 매우 겹친다


트리거로서의 김규평



우선 영화는 의도적으로 박통과 김부장을 겹치게끔 연출한다. 구도도 명암도 대사도 제스처도.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연출될 때 같은 야망을 가진 서로 다른 두 남자 뭐 이런식으로 보이진 않았다. 박통도 박통자신을, 김규평도 박통을 생각했을 것이다. 같은 대상을 생각한 서로 다른 두 남자의 반대되는 행보가 인상깊었다.




김규평의 속내는 도통 알 수 없다. 영화에선 그가 순수힌게 혁명가이고, 박통에 대한 충성도 진심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박부장이 그에게 혁명 왜 했냔 질문을 하자 그는 '네가 하자고 해서'라고 답한다. 이후 그는 혁명에 가담한 자신의 속을 살펴보지 않는다. 상기한대로 박통에게 초점을 옮겨 '왜 그가 혁명을 한 것인가'에 천착한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규평은 주연이지만, 오히려 그는 껍데기만 존재하는 일종의 트리거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그 지점이 바로 '세련된 흑백'이라 본다. 그의 속내가 어쩌구 저쩌구하며 드러났다면 영화 자체의 균형은 너무 쉽게 깨졌을 것이다.



박통 저격 후 보여준 5분 남짓의 김규평 모습은 바로 그 트리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가 왜 중정으로 가지않고 육본으로 갔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알고도 숨겼다기보다 애당초 모르기로 작정한 것처럼. 그리고 그걸 눈알 굴리는 것부터 손가락 움직임까지 너무나 훌륭하게 살린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완벽했다.



균형의 미학


그 마지막 장면에서 과장된 부감을 사용한 것도 좋았지만, 그 순간 중앙선이 육본쪽으로 살짝 기울게 잡은 그 카메라 구도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총알이 제대로 장전됐음에도 도중 불발했던 그의 권총처렁, 뻥뚫린 어두운 길을 곧게 헤쳐나갈 것 같던 그는 이미 기울어진 도로에서 올바른 목적지를 벗어난 채 달리고 있었다. 그는 몰랐고, 관객인 우리는 감독이 부감으로 주욱 당겨잡아줄 때 발견하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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