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4년 개봉한 해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입니다.
‘보고 나서 할 말이 많은 영화.’ 내게 좋은 영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임을 일전에 밝힌 바가 있는데, 오늘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 에블씽 에블웨어 올앳원스에서도 남겼듯, ‘두어 번은 더 보면 글을 잘 쓸 수 있겠’다는 아쉬움을 만드는 영화. 같은 영화 반복해서 볼 여력이 없다보니 좀 더 절박한(?)기준이 되시겠다.
영화는 재건된 Knowhere에서 Creep을 부르는 로켓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절묘하게 특정 가사만 읊조리는 로켓의 모습은 결국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했는데, 영화를 직접 보며 느낄 감동을 위해 말을 아끼지만 여하튼 상당히 인상깊었고, 나중에 ‘아하’하는 깨달음을 줬다. Wanna Perfect body이지만, Wanna Perfect soul은 생략한 거 너무 좋다.
가오갤 멤버의 정체성은 ‘어딘가 덜 떨어진 등신들의 조합’에 있다고 본다. 상황파악 안되고 농담이나 건네는 멤버들 사이에서 진절머리를 내다가 어느새 똑같이 물들어버린 가모라, 그리고 네뷸라까지. 하지만 가오갤 멤버들은 단 한번도 서로의 부족한 점을 뜯어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서로의 호흡을 맞춰가며.
일본은 ‘와/和’사상이 강한 나라다. 그래서 각자의 자아실현보다는, 사회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자신을 정해진 틀에 깎아 맞춰 넣은 뒤 절대 그 영역을 넘지 않는다. 마치 규격이 일정한 벽돌로 만들어 낸 담과 같달까. 반면 한국은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돌들이 신기하게도 아귀가 들어맞아 담으로 거듭난다. 가오갤 멤버들은 그런 한국식 돌담과 같은 느낌이다.
다시 가오갤로 돌아와, 시리즈 마무리를 짓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의 성장과 서사 완결’이라는 점을 충족시키면서도 각 캐릭터의 특성을 깎아먹지 않은 서사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서사는 가오갤 멤버의 여정을 완벽히 마무리 지을 뿐 아니라, 영화의 주제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로켓의 과거 동료였던 플로어(토끼), 티프스(바다코끼리), 라일라(수달)는 각각 다리, 꼬리, 앞발을 개조당했다. 빨리 달릴 수 있는 토끼의 특성을,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바다코끼리의 특성을, 수중 생활을 완벽히 보조할 수 있는 수달의 특성을 지워버렸다. 1주일에 30칼로리만 먹고 1시간만 자도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복도도 유지할 수 있는 백발의 인류를 만들어 낸 것도 극한의 효율만 추구한 하이에볼루셔너리의 사상이 잘 담겨있다. 그런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불완전한 멤버로 이뤄진 가오갤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완벽한 안티테제가 된다. 결국 마지막에 그를 제압한 로켓은 ‘너는 완벽을 바란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싫었을 뿐이야.’라고 뇌까리는데, 이는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이자 서사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PC함을 무분별하게 내세우는 헐리웃 영화에 귀감이 될 만하다. ‘고등생명체만 구할 줄 알았어요’라는 말에 ‘나도 그럴 줄 알았어’라고 피터가 대답하는데, 사실 우리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히어로 영화에서 영웅들의 위력을 과시하는데 그쳤던 부서지는 건물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 받은 충격과 결이 비슷했다. Black is matter라거나, Girl can do anything같은 ‘반/反’에 불과한 구호(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호의 의의는 존중한다!!!)에, 정과 반 뒤에 와야 할 ‘합/合’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 쿠키 영상에서 보여준 가오갤 멤버들의 모습도 엔드게임의 그 여성 히어로 집결과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PC는 이게 PC아닌가.
가오갤 멤버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자면, 딸을 잃은 슬픔에 복수의 칼만 갈던 파괴자 드랙스는 결국 이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백발 인류의 아버지가 된다. 비유를 곁들인 충고조차 제대로 못 하는 지능을 가졌고 분위기 파악도 영 젬병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죽어라 안 듣는 외곩수였지만, 백발 인류를 살리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멘티스 역시 비슷한데, 커다란 괴물(종족 이름 까먹음)을 다루는 것에 성공한다. 이 두 인물의 이런 성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있는 모습 그대로’다. 네뷸라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빈축을 사곤 했고, 멘티스는 ‘누구도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라고 까지 했지만 결국 이들의 이 모습은 변하지 않은 채 위기를 극복하는 저마다의 꼭 맞는 열쇠들이 되어준다.
목적의 효율을 위해 상해를 넘어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가모라와 대비되는 가오갤 멤버들의 모습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오르고스코프에서 보여준 작전 시퀀스는 이런 부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가모라가 합리적일 수 있다. 퀼이나 멘티스의 방법은 답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런 모습이 가오갤의 정체성이다. 과학자를 설득한 최후의 수단은 가모라의 총이 아니라 퀼의 회유였던 점을 주목하자.
네뷸라, 아담 워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일단 가모라와 퀼의 관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액션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퀼은 현재의 가모라에게서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가모라를 자꾸 끌어내려한다. 그녀에게 너는 라바저스가 아니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며,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이자 자신의 옆이라고 외치며. 그러나 영화 끝에서 퀼은 결국 그녀를 보내준다. ‘현재 가모라’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가모라와 퀼은 이어질 수 없다. 퀼이 사랑한 가모라는 사실 인피니티워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모라 역시 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나는 네가 아는 가모라가 아니지만, 우리가 함께였다면 정말 즐거웠을 것이라며.
모든 우주의 크리스틴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이 우주의 가모라를 떠나보내준 퀼의 행동 역시 일리가 있다. 둘 다 똑같은 사랑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영화가 서사를 위해 액션이나 다른 연출을 포기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초반부 액션도 그렇지만 후반부 함선 내에서 보여준 가오갤 멤버들의 전투씬은 각 멤버들의 특징을 고스란이 살려주면서 특별히 누구에게만 비중이 쏠리지 않은 절묘한 장면이었다. 힘으로 집어던지고 자신의 주무기로 베고 던지는 드랙스,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최면을 활용한 멘티스, 작은 체구를 이용한 역동적 총격의 로켓, 그리고 그 작은 체구의 제한적 움직임을 보조해주며 퀼이 마음놓고 사격할 수 있도록 돕는 그루트, 드랙스가 저돌적으로 돌진한 자리에서 놓치게 된 적 근접 전투원을 무력화시키는 네뷸라와 가모라. 각자 단점이 있고 그것이 위기를 초래할 수 있지만, 저마다 잘하는 것으로 상대의 단점을 보완하며 완벽한 합을 만들어내는 액션은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즐겁지만 어벤저스에서 보여준 영웅들의 뉴욕 시가전 앙상블처럼 탄탄한 의미도 지닌다.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나로선 사실 가오갤에 큰 애착이 없었으나(토르 3편 당시에도 '가오갤 같은 걸 끼얹나?'라고 비아냥댔다 ㅠㅠ) 이번 시리즈는 제임스 건이 작정하고 칼을 간 모양인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로켓의 초반부 전투에서 휙 돌아가는 카메라 워크 뿐 아니라 적절하게 배치된 OST까지도. 물론 영어가 짧아 다 알아듣지 못했다 ^^;;
아무튼 영화의 마무리는 사실상 첫 번째 쿠키 영상까지 쳐줘야하는데, 가오갤 멤버끼리 어떤 곡이 최애냐를 꼽을 때 로켓이 마무리로 언급하며 흘러나오는 곡이 바로 가오갤1의 오프닝인 ‘Come and get your love’다. 시리즈를 사랑한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마무리란 생각이 들지만, 이 역시 가오갤의 주된 메시지와도 이어진다. 엔딩 직전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 퀼이 여러 액자를 보는데 그 중 적힌 글귀가 대충 ‘Man grows with love’였나 그랬을텐데, 잠깐 스쳐가는 부분이지만 그냥 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가오갤 멤버는 서로가 얼마나 부족한 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랑해준다. 완벽한 작전 수행을 위해 상대방을 다듬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으로 약점을 상쇄해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곁을 떠나는 멤버들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신승훈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헤어져도 사랑할 수 있잖아.’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은 정말 어디에도 없는, Knowhere일까. 조금만 서로의 틈을 허용해주면 바로 '이곳이 그런 곳임을 알 수 있지/Know here' 않을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