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이 싫어서' 단상

행복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by 범준

'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3년 개봉한 국내 영화 『한국이 싫어서』입니다.




국이 싫어서. 계나는 한국을 떠났다. 그곳이 뉴질랜드인지 어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추운 것(하나 더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남)이 싫어서-라고 했지만, 실은 추위 그 자체라기보다는, 아늑해야 할 집이 삭풍 하나 막아주지 못하는 그 현실을 추위가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녀는 대쪽같고 당차다. 대차다-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할까. 상사의 의뭉스러운 부름 속 담긴 부당한 지시를 칼같이 쳐내며 눈 부릅뜨고 거절한다. 연민 비스무리한 것이 묻어나는 연인의 태도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허나 그녀는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내가 자격지심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라고 하지만, 실제 그 장면은 그런 식으로 연출이 되었다. 물론 그렇기에 관객은 그녀에게 이입하기가 더욱 쉬울 것이다.




녀가 완전 무결한 존재였다면, 그녀가 한국을 떠나는 당위성이 더욱 공고해지겠지만, 관객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는 것만 같다.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쉬이 떠올리게 만들고, 때론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투영해봄직도 하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났지만, 마치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처럼 한국 시스템에 잠식되어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재인의 첫인상만으로 그의 타입을 판단하는 모습이라거나, 엘리의 외모를 보고 현지인인 그녀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것 역시 오랜 세월 한국을 살아오며 영과 혼과 골수에 새겨진 한국의 밈이 발동한 것이다. 그런점에서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의 동화가 메타포로 등장하는 것은 현명한 상징이라고 본다.



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난 그녀는 정말 행복을 찾았을까. 카메라에 담긴 색감의 차이, 계나의 외모 차이를 들어 분명 계나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계나는 놀랍도록 또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의 정체성을 가진다. 마치 뉴질랜드를 간 적이 없는 것처럼.



독의 연출이 대단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있다. 시간 순서대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여 계나가 추구하는 행복과 (한국에서 계속 살아가는)주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하거나 누리는 행복을 대조하는 것도, 계나 스스로를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녀는 동생에게 뉴질랜드로 같이 가자고 한다. 첫 씬에서 히키코모리처럼 보여진 동생은 사실 작중 그 누구보다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아가는 인물(뜻돌님 좋아용)이다. 계나는 그런 동생이 일견 안타까워 보였겠으나, 사실 그녀야말로 계나가 추구하는 행복을 온 몸으로 누리는 인간에 가까워 보이는 아이러니.



론 계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햇수로 3년이 지나자, 창고 개조한 방에서 어렵사리 잠들던 그녀는 이제 누군가에게 방을 셰어할 수 있는 경험자로 자라났다. 그리고 3년 전 자신을 또 다른 초심자에게 투영하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녀는 힘들게 일하며 얽매이지 않는 사랑도 해보았고, 대학원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제는 여기있다! 작중 그녀가 가장 행복해보이는 지점은 대학원 졸업인데, 대학원 졸업은 뉴질랜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 졸업은 영주권 취득과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이긴 했으나 계나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재인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유학원이 제시하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며 살아가는 이도 있었다. 대체 그녀가 누린 행복의 근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리고 그녀는 결국 행복해졌는가? 주변 인물들이 신축 아파트를 소유하고 사랑하는 이와 가까이 있게 되고 꿈을 찾아가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면서 저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행복을 찾아가고 있지만, 계나는 영화 끝에서 다시 하와이로 떠나게 된다. 행복을 설파하던 이는 뜬금없이 죽어버리고, 누구보다 간절히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던(것처럼 연출된) n수생 동기는, 높은 곳에 가서 내려다보고 싶다는 말을 죽어서 이룰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여기 어디에 행복 공식이 있는가.



나는 여전히 한국이 싫고, 여전히 행복을 찾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어딘가에 있는 개념이 아니기에, 계나는 결국 또다시 떠돌 것이다. 영화 제목은 현명하다. 한국이 싫어서-라고 끝맺음을 하지 않았듯, 계나의 행복 찾기 역시 수미상관의 구성을 지니며 계속 계속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어떤 면에서 영화가 대체 뭘 말하려는건지 아리송한 부분도 있겠으나, 카메라 연출이나 여러 상징적인 면에서 제법 볼만하고 근사한 지점이 많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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