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단상

'닥터 스트레인지2'와 미장센 비교를 중심으로

by 범준


'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2년 개봉한 해외 영화 『더 배트맨』입니다.




언제부터 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은 빼놓을 수 없는 정체성이 되었다. 그러나 '캐릭터성'과 '힘의 종류'는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는 빠른 몸놀림, 누구는 어마어마한 완력, 누구는 번개를 다스리는 능력, 누구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가지고 싸운다고해서 그 캐릭터의 정체성이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더 배트맨'의 경우, 지금 시대의 히어로물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아 영화 너무 늘어지고 액션 적은거 아님?'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그런 연출 덕분에 배트맨 시리즈의 새로운 기념비를 만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1. 기존 배트맨 실사 영화 시리즈와의 비교


늘날 대중매체에서 배트맨을 인식하는 기준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인데, 팀 버튼의 배트맨은 '기괴함, 동화적인'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냥 어린이용 특촬물 수준에 불과했던 히어로 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본격적으로 서사와 캐릭터를 구축한 기념비적인 작품.


뒤 이어지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는 아마 지금 시대 가장 유명한 배트맨 시리즈가 아닐까. 놀란의 배트맨은 '현실밀착, 고뇌하는'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 다소 동화적인 느낌이라, '외따로 존재하는 어느 옛날 고담시'라는 느낌이었다면 놀란 시리즈에서는 '오늘날 고담시가 미국에 실재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느낌.


시리즈의 차이에 대해서만 글을 써도 장문이 나오지만, 여하튼 이 두 시리즈의 정체성을 조커의 연출 방식을 두고도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 팀 버튼 시리즈의 조커는 약간 정신줄 놓은 싸이코패스 예술가 느낌이라면, 놀란 시리즈의 조커는 무정부주의 범죄자 느낌.


럼 '더 배트맨'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기존 시리즈와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감독은 애초부터 '리들러' 라는, (영화 기준)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빌런을 메인으로 내세우며 '추리물'처럼 연출할 것이라 선언했다. 현명한 접근이라고 본다.


러면서도 기존 배트맨 시리즈와 원작 코믹스에 대한 다채로운 오마주를 잊지 않은 센스에 감탄을 보낸다. '색다른 배트맨'을 선보일 것이지만, '근거있는 배트맨'일 것이란 자신감을 한껏 내비친 것 같다.





2. 장르와 미장센의 시너지 - 닥터 스트레인지2와 비교


실 묵혀 둔 이 글을 다시 쓰게 된 데는, 최근 관람한 닥터 스트레인지2의 역할이 컸다. 그 영화가 망작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더 배트맨'이 떠올랐다. 두 영화는 '인상 깊은 미장센'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하지만 그 미장센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느냐는 판이하게 갈린다.


영화에서 배트맨은 전혀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특별한 슈퍼 파워가 있지도 부각되지도 않으며, 고담시 내에서도 특별한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2년차 배트맨의 모습은, 배트맨이라기보다 자경단에 더 가깝다. 첫 등장에서도 오히려 이게 '우리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연출을 사용했다. 홀연히 어둠 속에서 나타나 스스로를 '복수'라고 칭하는 배트맨의 모습 그 어디가 히어로인가. 첫 등장에서부터 감독이 이 영화에서 다룰 배트맨의 모습이 어떠한지, 강렬한 미장센으로 잘 전달했다.


트맨에게 쫓기던 펭귄이 전복된 차 안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배트맨을 볼 때, 뒤집어진 펭귄의 시점으로 배트맨을 잡는 장면이 나온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박쥐의 모습처럼, 화염 속에서 배트맨은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제서야 자경단에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는 그 첫걸음을 절묘하게 잘 잡아냈다.


라이막스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맞닿은 마피아 보스의 본진으로 쳐들어갈 때, 암전된 상황에서 배트맨의 기습 씬이 등장한다. 이때 정확한 액션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빗나가는 총열에서 내뿜는 불빛에 간혹 일렁이는 배트맨의 실루엣만 보인다. 범죄자들이 백주 대낮에도 당당하게 도시 구성원으로서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고담시에서, 배트맨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은밀한 곳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악당들에게, 그 은밀한 곳에서부터 홀연히 드러나 그들을 집어 삼키는 배트맨의 모습. 액션이 적었으나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맷 리브스가 만들어 낸 미장센의 힘이리라.


둠 속에서 줄곧 활동하던 박쥐 가면을 쓴 자경단이, 고담의 진정한 영웅 배트맨으로 거듭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미장센 역시 빛을 발한다. 어두운 물 속으로 가라앉는 시민들을 구해내는 배트맨이 불빛을 들고 어둠을 헤집으며, 결국 '브루스 웨인'이 아닌 '배트맨'으로 백주 대낮 고담시내로 모습을 드러낸 그. 영화의 끝에서 이제 진짜 '배트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렇듯 이 영화의 미장센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영화 내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게 되는지를 아주 밀접하게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된다. 느와르에 가까운 히어로물이라는 장르 특성과 성공적으로 맞물렸다고 볼 수 있다. 추리물로서 사건의 진실에 뚜렷하게 접근해가는 진행방식과 유사하게, '배트맨'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뚜렷하게 찾아가며 해답을 발견하는 방식 군데군데 미장센이 쓰였다.




터 스트레인지2로 잠시 시선을 돌려, 이 영화에서도 돋보이는 미장센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 내에서 모든 미장센은 그저 '공포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는 것에 그쳤다. 분명 '닥터 스트레인지'의 두번째 이야기를 전해야하는데, 오히려 스칼렛 위치로 흑화된 완다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만 줄곧 초점을 맞춘다. 공포를 유발하는 미장센은 거기에만 쓰였다. 아니 그 영화가 무슨 '완다비전2'냐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일전에 시리즈 첫 편에서 보여준 무궁무진한 디멘션 활용법이라거나, 인피티니 워에서 타노스와 대결하며 보여준 현란한 마법은 온데간데 없다. 무슨 미사일 슝슝 쏴대고 음표 공격이나 해대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캐릭터 밸런스 붕괴를 이런식으로 인상깊게 하는 것도 미장센이라면 미장센이라고 해야하나.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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