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단상

모든 능력 보다도, 그저 사랑으로

by 범준

'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2년 개봉한 해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입니다.




모든 것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우주에서 가장 일이 잘 안풀린 에블린이 점차 각성할 때마다 빌려오는 다른 우주의 에블린 중 피자 홍보원, 미숙한 요리사, 가정부 등도 포함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쿵푸를 배워 액션배우로서 성공한 삶을 사는 에블린의 능력도 빌려오지만, 결국 그 소소한 일상의 에블린들이 모여서 이 세계의 에블린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다. 가장 유능하고 출중한 에블린만 선별하여 능력을 연결시키면 좀 더 효율적일까? 영화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순간 적합한 재능'과 '뛰어난 재능'은 꼭 같은 것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점프 버스(JUMP VERSE)를 할 때 정말 쓰잘데기없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능력하고 어리석어보이는 남편 웨이먼드을 답답해하는 에블린. 알파버스의 웨이먼드처럼 상황판단력이 우수하고 출중한 무술실력을 가지고 있는 웨이먼드가 이 세계 에블린의 남편이었으면 그녀의 삶은 훨씬 더 나아졌을까? 또, 액션배우로 성공한 세계 속 부자가 된 웨이먼드를 만났으면 에블린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세무조사에서 위기에 몰려 일을 그르칠 뻔 한 에블린을 대신하여 세무관을 설득하고 시간을 벌어준 것도, 세탁소에서 거스름돈이 잘못 나와 불만을 표하는 손님의 마음을 풀어준 것도, 에블린의 폭주를 막아주는 것도, 조부 투파키를 다시 딸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순간에 몸을 던져 도와준 것도 그 물렁물렁한 웨이먼드였다.


블린은 자기 삶에 치어 웨이먼드의 참된 가치를 점점 외면하게 되었을 뿐, 온 우주에 얼마나 다양한 웨이먼드가 있다한들 이 우주의 웨이먼드 역시 여느 우주의 멋진 웨이먼드 못지 않게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는 다만 길(Way)에 떨어진 다이아몬드(Dia'mond')였기에 '설마 저게 진짜 다이아겠어?'하는 의구심을 품고 발길로 쉽게 걷어차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다.


무함에 빠져 폭주한 에블린이 엉망으로 만든 세탁소의 깨진 유리를 말없이 치우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깊었다. 가장 아무 것도 아닌 듯한 그의 헌신에 포옹으로 화답하는 에블린의 모습도. 결국 모든 우주의 에블린들을 다 경험하여 가장 강력한 에블린이 되었어도, 자신을 벗어나려는 딸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고 품어주는 에블린의 모습은, 바로 그 전에 웨이먼드를 포옹해주지 않고서는, 모든 곳에서 모든 방법으로 헌신했던 웨이먼드가 아니고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모든 곳을 다 경험한다 하더라도


파버스의 웨이먼드 말에 따르자면, 수많은 우주 속 에블린들은 이미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죽었다. 그런데 전 우주에서 가장 많은 실패의 선택을 한 에블린이 결국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그것을 '가능성'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우주에서 모든 것을 경험한 조부 투파키는 결국 허무주의에 빠졌다.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더이상 아무 의미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곳을 다 돌아다닌 조부 투파키는 정말로 강력하지만, 결국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대로 에블린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의 선택을 모두 피해갔다. 그 결과 모든 우주에서 가장 잘 안 풀린 에블린으로 전락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부 투파키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은 에블린이 될 수 있었다. '보다 나은 경험'을 통해 '얼마나'성장할 지, 흔히 말하는 포텐셜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리는 저마다 삶의 순간을 지나오며 각자의 재능으로 특정 선택에 대한 결과를 누리고 있다. '그때 그 선택으로 인한 경험'치를 이미 받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딱 그만큼 더 '결정된 존재'가 되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하나가 더 사라진 셈이다. 그것이 성취의 이면이다.


'그때 이런 선택을 했다면 내 삶이 나아졌을텐데'라는 상상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에블린은 여러 점프 버스를 하면서 가장 동경하는 형태의 자기 삶에 심취하곤 했다. 모두가 동경하는 성공한 배우의 삶. 그러나 그 우주에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에블린이 궁극적으로 회복하려했던 '가족'은 전혀 없었다.




한꺼번에 쏟아부어야만 하는 순간


후로 각성한 에블린이 벌이는 전투시퀀스는 상당히 인상깊다. 1부에서 처음 각성하여 보여주는 액션신과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부분이 있다. 오로지 제압을 위한 최선의 효율을 보이는 액션은 이제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향으로 진보하였다.


리고 이 와중 아주 인상깊은 씬이 있는데, 핫도그 손을 가진 우주의 자신도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각성하게 되는 모습이었다. 초반부에 에블린은 잘못된 점프 버스를 통해 핫도그 손을 가진 자신과 연결되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 에블린이 보여준 모습은 대체로 그 상황에 가장 효율적인 점프 버스를 통해 위기를 적절하게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조부 투파키와 마주한 그 중요한 순간에 정작 가장 쓸모없는 모습으로 점프 버스 연결이 되어버린 부분은 웃음포인트이기도 했다. 더럽고 우스꽝스러운 핫도그 손 우주의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손에 시선이 빼앗겨 미처 보지 못했던 발의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에블린의 모습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세계 속에서 에블린이 세무관과 연애하는 사이였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다.)


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 조부 투파키와 겨루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이미 한 번, 아니 두 번이나 실패한 바가 있다. 첫번째는 영화 1부의 최후에서, 두번째는 알파버스에서. 점프 버스를 가장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조부 투파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실패가 되었다. 전 우주 통틀어 가장 유능했으리라 여겨지는 알파버스의 에블린은 그 점에서 조부 투파키를 제치고 사실상 '만악의 근원'이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며 도구화시킬 때, 우주는 뒤틀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웨이먼드의 외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다.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지만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이제 그만하자고. 자기 자신의 입장을 주지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제압하고자 하는 욕망은 실로 강력하다.


군가 인류 역사는 어쩌면 그런 욕망을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여전히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되는 그 원리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들의 연대'. 여전히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욕망에 삼긴 인류는 이미 절멸하였을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조부 투파키와 에블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관을 대적하기 위한 점프 버스의 주문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이었다. 1부 중반에 에블린은 그것을 해낸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주문의 완성은 더 뒤에서야 이뤄진다. 세무관의 삶을 이해하고 맞닿기 시작하면서, 에블린은 세무관을 진심으로 껴안으며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웨이먼드를 껴안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 힘은, 결국 영원한 허무로 들어가려는 조부 투파키를 다시 자신의 딸 조이로 되돌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조부 투파키를 조이에게서 떼어내려했던 에블린은, 조부 투파키를 온전히 품음으로서 조이를 온전히 품어낼 수 있는 진짜 엄마로 거듭난 것이다. 모든 우주에서 모든 능력을 다 가지게 되어 그것을 쏟아붓는 대상은 딸이 아니다. 딸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기 위한 순간이다. 딸에게는 모든 능력보다도 사랑이 필요했다. 파멸의 길로 걸어가는 딸에게 주저없이 다가가 손을 잡고 끌어내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랑.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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