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께 찾아옵니다.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3년 개봉한 국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소설 「감자」로 유명한 김동인은 소설 속 인물의 주체성을 믿지 않았다. 주체적 인물을 그려내며 개화와 계몽을 제창한 춘원 이광수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컸겠으나, 어쨌든 그가 보여준 ‘환경결정론’이나 ‘인형조종술’은 우리 문학을 넘어 철학과 사회학 전반에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환경은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가?’
사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예고편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갈 수 있고 쉽게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좀 본 사람들에게 있어선 반전이랄 것도 없고, 그야말로 ‘보란 듯’떡밥을 던져댔다. 내 경우 ‘그럼 언제 터트려서 어떤 여파를 몰고 올건지’가 궁금했지만, 감독은 관객에게 그런걸 찾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평범하면서도 적당히 순수한 인물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환경 속에서 점차 타락해가는 것은 사실 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관객 멱살을 잡고 흔드는 신파도 없고, 불필요한 가르침도 설파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 앞에서 마치 ‘불쾌한 골짜기’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라리 아예 이것은 영화에 불과하다고, 비현실적이라고 하면 좋을텐데 그러지 않으니까. 이 영화가 소위 말하는 올 여름 국내영화 빅4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다니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 영화가 그동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소름 돋도록 정밀하게 그려냈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악귀」에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대사가 나왔다. 이 영화에서도 사실 대지진과 같은 재난은 본질적 재난이 아니다. 진짜 재난은, 그 뒤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저버리는 공동체 그 자체다. 영화가 재난의 원인을 다루지 않는 것도, 그 해법을 다루지 않는 것도 현명하다. 영화 시작에서 그렇게 몰아쳤던 대지진이 무너뜨린 것은 서울 도심의 문명뿐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공동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적당히 느슨한 유대감을 가지던 이들이 오히려 단단히 뭉치려 들 때, 그 틈 사이로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각 사람들은 흩어지게 된다.
관계의 대지진. 유일하게 굳건한(근데 초반부 무너진 배경 뒤에 멀쩡한 아파트 하나 보이던데!?)황궁 아파트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었다. 살아남은 바벨탑과 같이 욕심에 욕심을 먹고 꾸역꾸역 버텨나갈 뿐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명화가 머물게 되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진 아파트였다. 줌아웃으로 길게 당겨줄 때, 그 곳에 생명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된 곳에서 오히려 이름없는 들풀처럼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배급 바구니에 물과 식량과 위생용품을 받고도 거기에 장기 보관에 용이한 캔 통조림을 더 배급받는 것이 기쁨이었던 그 유토피아를 벗어난 명화 손에 쥐어진 따뜻한 밥 한 덩이. 인간의 이기가 묻지 않은 그 순수하고 작은 밥 한 덩이는 ‘식기 전에 먹어야’한다. 내일은, 모레는? 모른다. 하지만 다만 오늘 곁에 있는 사람들 입에 들어갈 쌀 한 톨이 있다면, 그게 정말로 식구/食口가 아니겠는가.
뱀발. 명화는 마지막에 ‘제가 살아도 되나요?’라고 묻는다. 인간성을 버려서라도 끝까지 자신을 지키려 하였던 남편 민성도, 자기 자신을 버려서라도 살아남고자했던 영탁도 죽었다. 문제는, 명화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인간성을 지키고 자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도균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도 죽었다. 명화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황궁 아파트에서는 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했지만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외에도, 이 질문은 그 자체로 명화가 자신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일 것이다.
뱀발 하나 더, 명화의 마지막 대사.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는, 내 생각에 감독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사실 제일 먼저 써놓은 대사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잡아먹었느냐는 질문에 기다 아니다로 답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잡아 먹는 외부인을 보며 경멸하는 모습을 보건대 ‘그것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갔다. 먹지 않았을 뿐, 죽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역시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