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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r 29. 2022

기억과 추억과 나의 동일함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다고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젊은 시절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을 돌이켜보면 다른 부분이 많다. 젊은 시절의 나는 감정이 강했고, 기분이 크게 좋을 때도 있고 기분이 크게 안 좋을 때도 있었다. 기분이 크게 안 좋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감정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발표를 하러 사람들 앞에 나설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고,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일적으로 연락할 때도 망설이지 않는다.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른 일에 두려움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감정이 다르다. 그리고 늙어서 외모도 다르다. 물론 외모의 일관성은 있겠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다고 해 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기억일까? 이렇게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어릴 적 내가 했던 행동을 기억하고, 그때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바로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나의 머릿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어서 다른 기계, 혹은 다른 사람에게 넣는다면 어떨까. 나에게서는 그 기억이 사라지면 어떨까? 여전히 나는 같은 나일까? 내 주변 사람의 기억이 그대로라면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억이 없다. 내 기억을 가진 사람이 내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본래의 나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과 추억을 함께 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나로 받아들여야 할까. 


술 마시며 옛날엔 여기서 놀았었지,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지라고 대화를 해도, 기억은 잃은 나와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지만, 내 기억을 가져간 그 무언가와는 말이 잘 통할 것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기억을 잃은 내가 불쌍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현실의 나는 기억을 이미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슬플 일도 없다. 원래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이미 없고 슬퍼할 사건조차 없다. 


메멘토에서 나오는 것처럼 내 기억들을 글로 적어두고, 그 글을 보면서 다시 나를 구성하면 나는 내가 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기억을 글로 읽고 이게 나는구나.라고 떠올린다면 내가 기억을 넘겨준 그 다른 무언가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른 무언가도 내 글을 읽고 이게 나였구나.라고 떠올릴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기억은 참 오묘하다. 기억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게 나를 구성하는 엄청나게 큰 부분이지만, 또 기억은 머리를 다치면 잃을 수도 있는 것이고, 언젠가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기계가 발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럼 기억은 언제든 잃을 수 있는 건데, 이렇게나 취약한 기억이 ‘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게 맞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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