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금요일 저녁, 우리는 여느 때처럼 자기 전에 누워 유튜브를 봤다. 침착맨 유튜브에서 이말년이랑 주우재가 도쿄 시부야 거리를 걷고 있었다. 끌끌거리는 둘을 보다가 아내가 말했다. 우리 도쿄 갈래?
우리는 갑자기 도쿄행 티켓을 알아봤다. 우리가 당일 여행을 계획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강아지였다. 강아지 호텔도 불안하고 지인에게 강아지를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던 아내는 일본에 오래 있기는 또 지겹다고 말했다.
일요일 오전 6시에 인천을 출발해서 도쿄에 오전 8시 30분에 도착하는 표를 발견했다. 도쿄에서는 저녁 8시 30분에 아웃. 이거 끊을까? 조금만 더 고민해 보자. 그렇게 금요일 밤이 가고, 토요일 아침 서로 볼일을 보러 나서다가 갑자기 정했다. 그냥 내일 도쿄 갈까? 그래.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그 자리에서 표를 끊었다.
표를 끊고 얼마 안 지나서 알았다. 도쿄 나리타에서 시내까지 두 시간은 걸린다는데? 이거 맞는 거야? 어 그러네? 취소 안 되나? 응 취소하면 80만 원 중에 20만밖에 환불 안 해 준대. 그럼 가야지. 나리타 근방에서 놀까? 찾아보니까 나리타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대. 급행열차가 있는데 이걸 타면 45분이면 도쿄 시내로 갈 수 있대. 그럼 계획을 짜 놓을 테니 일단 떠나 보자. 그날 집에 앉아서 일본 지인들에게 연락하며 하루종일 계획을 짰다. 도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일본이 이렇게 큰 나라였다니. 그리고 도쿄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도쿄에서 대충 유명한 곳은 크게 시부야, 신주쿠, 도쿄역 이 정도인 것 같았다. 물론 더 한적하고 좋은 곳도 많았지만, 당일로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우선 나리타 공항에서 우에노까지 가는 급행열차를 미리 끊어 두었다. 우에노역까지 대략 45분 걸린다고 한다. 우에노역에서 오모테산도역까지 가서 거기서부터는 마음 가는 데로 걷기로 결정. 맛집도 일부러 찾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맛집을 가서 뭐 하겠어. 그냥 발길 닿는 데로 들어가서 먹기로 결정.
그리고 다음날 새벽 4시 30분,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졸린 몸을 이끌고 비행기를 탔다. 원래 일찍 자는 편도 아니어서 한 시 가까이 잠들었는데, 네 시 반까지 공항에 가려니 한 세 시간 잤나..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거의 바로 잠들었다.
그렇게 도쿄에 도착해서 스카이라이너를 찾아갔다. 미리 예매해 둔 예매 번호를 가지고 스카이라이너 매표소에 가면 시간에 맞게 티켓을 발권해 준다.
도쿄에 있는 어지간한 안내판에는 모두 한국어가 함께 적혀 있다.
우리는 백팩 두 개만 딱 메고 갔다. 당일로 다녀오니 세면도구도 필요 없고 갈아입을 옷도 필요 없다. 흔히 우리가 여행이라고 생각할 때 챙겨야 하는 대부분의 짐이 필요 없어진다. 출국 수속을 할 때도 백팩만 메고 나오면 되는 게 당일 여행의 아주 큰 장점.
우에노역에 내려서 긴자선을 타고 오모테산도역까지 가기로 했다. 오모테산도역부터는 마음 가는 대로 걷기로 했다.
오모테산도는 뭔가 한국 같은 느낌이다. 아니 도쿄 전체가 한국과 크게 다른 느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모테산도에서부터 요요기공원까지 큰 길이 이어져 있어서 우선 요요기공원 쪽으로 걸었다.
요요기공원을 들어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시부야역 쪽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도 못 먹었는데 벌써 11시. 오모테산도에서는 딱히 밥 먹을 만한 곳이 없었다. 사실 구글 검색을 하면 꽤나 괜찮은 음식점들을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남들 다 가는 음식점을 안 가고 싶어서 오기로 참았다.
시부야역에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큰 길만 다녀서 그런지 별로 먹을 만한 데가 눈에 안 띄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파르코 백화점
파르코 백화점 음식점은 아침 11시부터 줄이 엄청 길었다. 우리는 밥먹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줄이 없는 초밥집을 발견하고 바로 직행
분명 초밥집에 들어갈 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우리가 나올 때는 여기도 줄을 서고 있었다. 시부야에서는 특별히 맛있는 집이 아니어도 모든 음식점에 대기 줄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인구밀도 최강 시부야. 관광객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도 많이 보이고, 서양인들도 많다. 파르코 백화점을 나와서 대기가 없는 카페를 찾아 떠돌았다.
카페를 나와서 이제 진짜 막무가내로 걸었다. 도쿄에 왔으니 도쿄타워를 보자며 도쿄타워를 향해 무작정 걷기로 했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롯폰기 쪽으로 걸었다.
롯폰기로 가는 길에 뭔가 밥을 또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데나 들어가기로 했는데..
메뉴를 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꼬치들이 있었다. 가라아게랑 꼬치를 시켰다.
새벽 2시 느낌의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또 걸었다. 오후에 새벽 느낌의 술집을 다녀오니 다른 세상을 잠시 다녀온 것만 같다.
도쿄타워가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알았다. 도쿄타워는 엄청나게 크고 높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었다. 저게 도쿄타워가 맞나? 의심하면서 사진을 찍고, 이제 도쿄타워를 봤으니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스타벅스에서 고민하다가 도쿄역 근처에 있는 니혼바시 다카시마야 백화점에 포켓몬센터가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도쿄역까지 걸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뭐라도 살까 하다가 다 짐일 것만 같아서 아무것도 안 사고 나왔다. 포켓몬센터에 바로 붙어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을 잠깐 둘러봤다.
도쿄역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도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에노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도쿄역에서 게이힌토호쿠선을 타고 우에노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니혼바시역에서 긴자선을 타면 됐을 텐데 일단 제일 큰 도쿄역으로 갔더니 길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새롭게 안 사실. 우에노역은 두 개가 있는데 그냥 우에노역에서는 스카이라이너를 탈 수 없다. 게이세이우에노역에서 스카이라이너를 타야 한다.
이제 나리타로 돌아가는 6시 20분 스카이라이너 표를 끊어두고 근처에서 저녁을 또 먹기로 했다. 일본을 왔으니 그래도 라멘을 먹어야 되지 않겠냐며 라멘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라멘집은 한참 찾아도 나오지 않고, 시간은 어느덧 5시 30분. 라멘집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대기가 있으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게이세이우에노역 앞에 있는 허름한 경양식집을 갔다.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데, 음식을 엄청 열심히 만드신다. 열심히 만드는 것에 비해 그만한 맛은 안 나온다는 게 함정. 역 바로 앞에 있어서 장사가 잘될 법도 한데 밥 먹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밥집이다.
여행은 항상 그렇다. 맛집을 찾아서 퀘스트를 해치우듯이 다니면 여행에서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집을 다녀와도 내가 거길 갔다 왔던가? 블로그로 경험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곳, 우연히 발견한 곳을 다녀오면 기억이 선명하다. 끝까지 검색하지 않고 찾아갔던 허름한 경양식집에서 진짜 도쿄를 만났다.
여유 있게 7시 좀 넘어 나리타에 도착해서 3터미널을 조금 둘러보고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다녀온 도쿄 당일 여행이 끝났다. 도쿄는 의외로 당일 여행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었다. 물론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여기저기 둘러봐도 좋겠지만, 생각보다 큰 감흥은 없었을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규칙을 따른다. 이왕 간 거 비행기표가 아까우니 더 놀다 와야 하지 않을까? 도쿄는 대부분 2박이나 3박은 하는 것 같은데 남들이 가는 것처럼 다녀와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깝다고 생각 말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