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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r 24. 2024

동남아의 숨겨진 보물, 아유타야

동남아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였다. 앙코르와트가 가고 싶었던 이유는 어릴 적 신문에서 봤던 관광 상품 때문이었다. 앙코르와트 0박 0일 000만 원. 신문 속 앙코르와트 사진은 너무나 이국적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렬하고, 별것 아닌 경험도 미화된다. 공부 말고 모든 활자가 재미있던 그 시기, 신문에 쓰여 있는 것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집착이 앙코르와트를 내 버킷리스트로 만들어 놓았다.


자고로 버킷리스트라면 최소한의 조사는 하기 마련이다. 정말로 가고 싶었다면 앙코르와트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왜 만들어졌는지는 알아야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렬했지만, 실행으로 옮길 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앙코르와트는 언젠가 꼭 가고 싶다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현실을 살아 왔다.


근래에 여행을 할 수 있는 5일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이번에는 반드시 앙코르와트를 가겠다며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조사해 봤다.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 어디쯤 있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캄보디아의 수도가 프놈펜이라는 것도, 앙코르와트가 시엠립이라는 도시에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글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번에도 앙코르와트의 도전은 실패했다.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행선지를 태국으로 정해 버렸다.



어느 나라이건 공항에 내리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태국 수완나품 공항은 예상과 다르게 그냥 여름에 접어든 인천 공항에 내린 느낌이었다. 친숙한 느낌이었다. 공항에는 차들이 가득해 정신이 없었지만, 벌써부터 방콕이 좋아졌다.

숙소 근처에 있던 릉루엉 국수, 방콕이 좋아진 또 다른 이유.
방콕의 아침
방콕 BTS 지하철


태국을 선택한 이유는 아유타야였다.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도시로, 태국 옛 왕국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미얀마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는 태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역사를 많이 조사해 보려고 했는데, 태국의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방콕에서 아유타야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가 더 걱정이었다.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방법은 총 세 가지가 있다. 기차, 미니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기차와 미니밴은 가격이 싸다. 나는 미니밴을 타자고 주장했지만, 친구가 기차를 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귀가 얇고 주체적이지 않으므로 기차를 타 보기로 했다.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완행 기차는 하루에 몇 대 없다.(아마 그런 것 같다.) 8시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길래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시간에 맞춰서 기차역으로 갔다.

아유타야로 가는 기차역

자유 여행의 묘미는 예측 불가능함에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인터넷에서 우리가 봤던 시간표는 전혀 맞지 않았다. 기차가 올 때까지는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던 상황, 기차를 기다리기에는 기차역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차역 근처에 서 있던 택시를 타기로 했다.


기차역 근처는 한산해서 택시도 몇 대 없었는데, 택시 아저씨에게 아유타야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물어봤다. 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다. 아유타야까지 800바트, 한국 돈으로 대략 3만 원 정도라서 흥정 없이 그냥 타기로 했다.


자유 여행의 묘미는 예측 불가능함이 맞다. 기름을 넣어야 한다고 주유소에 들어 갔는데, 기름을 넣고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하니 차 시동이 안 걸렸다. 주유소에 있던 택시 아저씨들이 모여서 차를 밀어서 구석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다같이 고민을 했다. 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아는 것이 없는 지라 뻘쭘하게 서 있었다. 어차피 말도 안 통하고.


아마 배터리가 방전되었던 것 같다. 다른 택시 아저씨가 차를 가져와서 배터리 점프를 해 줬다. 주유소에서 한 30분 정도 실랑이를 했는데, 그래도 결국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다. 예정보다 아유타야에 늦게 가게 되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더 즐거웠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택시 아저씨 탓을 하고, 왜 나에게 이렇게 운이 없을까 생각했을 텐데, 자동차 배터리 방전이 즐거운 일이라니.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나 보다.

자동차 보닛을 열었다.
옆 택시 아저씨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우리 택시 아저씨가 '사와디캅'이라고 말하며 합장 인사를 했다.


아유타야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에는 에어컨이 나와서 몰랐는데, 차 밖으로 나왔더니 무척 더웠다. 12월 말이었는데 온도가 무려 35도.

아유타야 기차역


아유타야는 작은 도시이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걸어서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보통은 툭툭이를 빌려서 다니거나, 가이드와 함께 돌아다닌다. 친구가 오토바이 운전을 할 줄 알아서 우리는 오토바이 한 대를 빌려서 같이 타고 다니기로 했다. 아유타야역에서 강을 건너면 오토바이 대여소가 있다.

강 건너는 배를 타는데 단돈 10바트(300원)
저렇게 작은 배를 타고 건넌다.
강을 건너서
오토바이를 타고 미슐랭 식당에 도착
특별한 맛은 아닌 듯. 파타야가 적당히 맛있는 곳.


이제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유적지는 7곳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순서대로 돌아보기로. 태국 불교 사원은 중국 사원과도 다르고, 우리나라 사원과도 다르다. 태국 사원은 태국만의 느낌이 있다. 정교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도 크기가 웅장하지도 않았지만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사원, 입장료가 무료이다.(다른 곳도 마찬가지)
곳곳이 부서져 있는데, 복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나무 줄기 속 부처의 머리. 아유타야를 가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불상 머리 옆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앉아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서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경비원이 제지한다. 불상보다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은 부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너무 많이 봐서 실물로 봤을 때 감동이 덜하다.
의외로 가장 좋았던 풍경.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다음 사원으로 넘어갔다. 이번 사원에는 회색 건물들이 많다. 사원마다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퀘스트를 공략하듯 사원을 돌아다녔더니 사원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사원, 하늘의 색과 잘 어울린다.
사원의 뒷면


35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돌아다니려니 금방 지쳐서 나무 그늘이 보일 때마다 쉬었다. 사원의 풍경보다는 나무 그늘에서 쉬었던 여유가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아유타야를 갔던 날, 한국은 영하 15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추운 곳을 피해 더운 나라에 와 있을 수 있다니. 호사스러운 일이다.

코끼리를 훈련하는 곳인 듯하다. 코끼리는 절대 타지 않기로.
누워 있는 와불
12월이라고 믿기지 않는 푸르름


슬슬 지치고, 사원도 지루해졌지만 마지막 사원은 구경하기로 했다. 아유타야 사원에 있는 불상들은 머리가 잘려 있는 것이 많은데, 미얀마와 전쟁할 때 미얀마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도굴꾼들이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원 한 쪽이 공사 중이어서 아쉬움.
머리가 잘린 불상들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태국 사람


마지막 사원까지 둘러보고, 아유타야역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비슷한 사원을 단시간에 너무 많이 봤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둘러 봤으면 좋았을 텐데, 더위를 피하느라 급하게 사원들을 돌아다녔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아유타야역으로
아유타야역 카페에서 먹은 인생 커리
더위 먹은 강아지


아유타야역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기차가 오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기차를 놓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차 예정 시간이 30분이나 지나서야 기차가 두 시간 가까이 연착된다고 방송이 나왔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차가 안 온다며 걱정했는데, 태국 현지인들과 서양인 관광객들은 연착이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기다렸다. 아유타야역에서 발을 동동구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두 시간만에 기차 도착. 서양인들을 따라 가면 대체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에어컨이 없는 기차를 한 시간 반 타고
다시 방콕으로 도착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우리 좌석에 누가 앉아 있어서 실랑이를 벌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좌석을 쟁취해 내고 앉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차에는 에어컨도 없고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가 들어왔다. 기차 밖은 드넓고 푸른 논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기차에는 쌀 포대에 짐을 가득 싣고 가는 아저씨, 아쉬운 듯 헤어지는 부녀, 젊은 커플, 커다란 배낭을 멘 서양인,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중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차 한 칸에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건지. 우리는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지.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얼마나 짧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건지. 이국적인 창밖을 보니 마음이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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