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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r 30. 2024

지하철 1호선의 차가움과 뜨거움

아무리 두통약을 먹어도 두통이 가시지 않을 때가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방법에 따라 스트레칭을 해도 잠깐 괜찮을 뿐 다시 머리가 아파지고, 하루 최대치까지 두통약을 먹어도 약이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 두통을 없애 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고,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것만 같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두통은 보통 하루, 길어도 이틀이면 스르르 사라진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내가 두통을 언제 겪었을까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린다. 당연하겠지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도 같이 사라져 버린다. 사람은 이렇게나 간사하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쓰고 싶은 글이 많았다. 작가가 되기만 하면 하루에 몇 편씩이라도 글을 올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2년 동안 브런치를 쓰려고 앉아 있던 시간을 다 합쳐도 채 하루가 안 된다. 


사람은 이렇게나 간사하다.


어렸을 때부터 1호선을 많이 탔다. 

어렸을 때는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동인천-서울 1호선을 탔고, 직장을 다니는 요즘은 천안-서울 1호선을 탄다. 1호선이 가로지르는 공간은 아주 길고, 여러 도시를 지난다. 서울 북부로는 의정부를 넘어서 동두천, 연천까지, 서울 서부로는 인천 방향으로는 바닷가가 근접한 인천역, 서울 남부로는 병점, 평택을 지나 천안, 신창까지 연결된다. 신창에서 소요산까지는 대략 4시간이 걸리고 아산-천안-평택-오산-화성-수원-군포-안양-서울-의정부-양주-동두천-연천 이렇게 총 13개의 시를 관통한다. 

1호선의 길이

그래서일까. 1호선에는 항상 사람이 많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1호선은 흥미롭다.


왜 갑자기 1호선 이야기를 하냐면,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이 1호선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1호선을 타는 다양한 사람군을 보면 세상의 축소판 같아서, 언젠가는 1호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작년 겨울, 직장 사람과 함께 1호선을 타고 집에 왔다. 직장 동료는 원래 4호선을 타고 다니는데, 오랜만에 1호선을 타 보고 싶다며 같이 1호선을 탔다. 그날따라 1호선에는 이상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욕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아줌마, 노약자석에 앉아서 전 정부 욕을 하는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찍으면서 뛰어다니는 청년.


이 모든 사람을 삼십 분만에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모두 같은 칸에서 말이다. 그날 이후 직장 동료는 1호선은 정말 이상한 곳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1호선은 정말 이상한 공간이다. 물론 이상한 일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사람들의 퇴근 시간인 6-7시, 술 먹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9-10시, 이 두 개의 시간 사이, 그러니까 대충 8시 정도에는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다. 운이 좋으면 앉아서도 집에 갈 수 있다. 그날 8시의 지하철은 나같이 눈치 없는 사람도 앉아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객실은 꽤나 한산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객실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옆 칸에서 긴 가방을 손에 들고 오는 긴 머리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행색이 초라해서 노숙자 같았지만, 허리는 꼿꼿했다. 그 할아버지는 객실 가운데 칸으로 오더니 가방을 천천히 열고, 죽도를 꺼냈다. 동작이 느려서 슬로모션 같았다. 아주 천천히 죽도를 꺼내서 아주 천천히 죽도를 허공에다 휘둘렀다. 위아래도 천천히, 두어 번 그렇게 죽도를 휘두르던 아저씨는 다시 죽도를 가방에 넣고, 다음 칸으로 떠났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지나간 자리는 여운이 남았다. 그런데 죽도를 휘두르는 할아버지보다 더 신기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태도였다.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던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죽도를 휘두르건 말건, 한 번 힐끔거리고는 다들 각자 할 일을 했다.


좋게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개성을 존중한다고 볼 수도 있고,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폭력이 일어나도 다들 관심도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실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 할아버지가 신경이 쓰였는데 모르는 척해 준 걸까. 아니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나 무관심하고 차가운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호선 사람들은 또 누구보다 정이 많기도 하다. 그 정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만큼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범한다. 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학생이 메고 있는 백팩은 반쯤 열려 있었다. 나는 조마조마하게 그 가방을 쳐다봤지만, 나는 그 학생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쳐다 보고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내가 가까이 있었다고 해도 딱히 가방을 닫으라고 말해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학생 뒤에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분은 학생의 가방을 계속 쳐다봤다. 가방 문이 열렸다고 말해 줄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결국 "학생 가방 문 열렸어요."라고 말해줬다. 학생은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듣지 못했고, 중년 여성은 다시 말했지만, 학생은 여전히 듣지 못했다. 그러자 학생의 어깨를 살짝 쳐서 가방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학생은 이어폰을 빼고 자기 가방을 한 번, 여성을 한 번 보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했다.


그러자 그분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가 그분은 슬그머니, 학생 가방의 지퍼를 올렸다. 학생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올려서 가방을 거의 닫았다. 


그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분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가방을 닫을 줄은 몰랐다. 학생에게 가방을 닫으라고 말해 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물건에 손을 대서 가방을 닫는 행위는 그 학생은 동의한 적이 없다. 


아마 그분은 좋은 의도로 가방을 닫아주려고 했을 것이다. 당연히 좋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다. 학생은 일부러 가방을 열고 다녔을 수도 있다. 상상을 해 보면 가방에 커피를 쏟아서 말리던 중일 수도 있고, 가방 안에 공기가 꼭 통해야 하는 물건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대로 자크를 닫은 행위는 어찌 보면 폭력적이기도 하다.



최근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신도림역 1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복작복작한 환승 통로, 그 복작복작한 가운데서 어떤 여성이 앞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뒤로 다시 메고 있었다. 그런데 가방 끈에 손이 닿질 않아서 허공에 손질을 하면서 걸어갔다. 


그 뒤를 바로 뒤따라 가던, 또 다른 여성이 가방 끈을 턱 잡더니 어깨로 올려 줬다. 앞에 걸어가던 사람은 그제야 가방을 제대로 멜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할 법도 했지만 그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방을 추스르며 갈 길을 갔다. 뒷사람도 딱히 감사의 인사를 받을 생각은 없었나 보다. 앞사람이 가방을 제대로 메는 것을 보고 쿨하게 그냥 갈 길을 갔다.


그 광경을 보고 큰 깨달음이 있었다. 아, 1호선은 이런 곳이구나. 이렇게 쿨한 공간이구나. 사적 공간이고 뭐고, 누군가 불편한 게 있으면 도와주고, 도움을 주는 게 당연하니 감사할 일도 아니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냥 다음에 다른 사람 가방 문이 열려 있으면 닫아 주면 될 일이고.


아주 작은 사건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속에 큰 울림이 있었다. 

역시 1호선에는 세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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