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by 생강

이천 년 전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목적론적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식물에게는 성장이라는 목적이 있으며, 동물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목적을 추구한다. 사람도 동물이기에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며, 동물과는 다르게 조금 더 고차적인 목적을 추구할 줄 안다. 종교적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고, 도덕적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이 대부분이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면 아마도 돈일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알바도 한다. 우리는 왜 돈을 목적으로 삼을까?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궁극적 목적을 찾아가 보자. 생각해 보면 돈 자체에는 사실 아무런 가치도 없다. 돈에 교환 가치가 없다면 돈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은행 잔고를 보면 기뻐지는데?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렇다면 왜 기뻐지는지 이유를 따져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만약 돈을 가지고 아무것도 교환할 수 없다면 우리가 돈을 가지고도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신용카드를 들고 시장을 갔는데 현금만 받는다면? 신용카드밖에 없고 현금을 뽑을 수단이 없다면? 신용카드 한도가 억만금이더라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것을 살 수 있는 수단이 돈이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가지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아주아주 과거로 돌아가서 물물교환의 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천만 원이 있더라도 고기 한 조각 사먹지 못할테니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궁극적 목적을 이해하려면 목적과 수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궁극적 목적은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겨울에 잠바를 입는 것은 추위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다. 대체로 수단이 되는 것들은 물질적인 것들이다. 물질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음향 기기에 대한 대단한 수집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음향 기기 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수집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음향 기기를 사는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적과 수단을 나누어 본다면 돈 자체는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다른 것들과 비교해 볼 때 특히 돈은 더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돈은 돈을 통해서 살 수 있는 물건, 음식 등의 수단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을 통해서 사는 물건이나 음식이 최종 목적일까? 당연히 아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면 컴퓨터 자체보다는 컴퓨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목적일 것이며, 음식을 먹어서 얻는 것은 맛있다는 느낌과 배부름, 생존 등이 목적일 것이다.


이렇게 목적을 따지고 거슬러 올라다가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는 목적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벌어서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것 등의 최종 목적은 모두 행복을 위해서이다. 심지어는 사랑과 같은 정신적인 것들도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따르면 우리는 무엇을 하건 행복해야만 한다. 인간은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언젠가는 그 목적에 다다를 것이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내가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에 도달했는가? 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인생 행복하세요?"라는 말에 긍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을까? 아마 그것도 아닐 것 같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복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단란한 가족도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돈도 있어야 하며, 직장 생활도 만족스러워야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뭐 등등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대체 언제 행복해질 수 있지? 죽기 전에 행복해질 수는 있나?


지인의 지인 중 한 명은 혼자 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 너무 행복해서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여행에 도달하기 전 그 순간이었다고 한다. 나는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두고 행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아마도 도달해야 할 커다란 목표가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는 작은 순간순간들일지도 모른다.


행복을 '목적'으로 정의하는 순간, 그것에 도달해야 하는 목표로 바뀐다.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지 못하고, 행복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찾아 고통의 순간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렇게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우리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니 자기 감정에 집중해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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